세금은 누가 뭐래도 정치적 이슈다. 국가를 유지하는 합법적 재원이 세금이지만,개인의 재산을 강제로 거둔다는 점에서 약탈적이다. 때문에 분배(증세)냐 성장(감세)이냐는 이념을 떠나 역사적으로 세금 인상은 정치권력의 무덤이었다.

1997년 일본 자민당의 하시모토 내각은 소비세를 3%에서 5%로 올렸다가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결국 총리가 퇴진했다. 영국에선 10년간 집권했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도 1989년 인두세를 도입했다가 정권을 잃었다. 캐나다의 멀로니 총리도 부가가치세를 전면 실시한 뒤 선거에서 져 1993년 정권을 내줬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지금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그는 오는 11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모든 물품과 서비스에 붙는 5%의 소비세를 10%로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당연히 소비세 인상은 민주당 정권 중간평가 성격인 참의원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됐다.

간 총리가 증세 공약을 내건 것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일본에서 소비세 인상은 타당한 정책이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00%에 육박해 선진국 중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는 재정을 재건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하다.

고령화로 돈 쓸 곳(복지)은 늘어나는데 경기 부진으로 수입(세금)은 줄고 있는 게 일본이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빌린 돈이 벌써 900조엔(약 1경1700조원)에 달한다. 이대로 가다간 '제2의 그리스'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일본인들도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일본 국민의 절반은 소비세 인상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최대 야당인 자민당도 선거 공약으로 소비세 인상을 주장할 정도다. 간 총리 입장에선 세금을 올릴 절호의 기회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역풍이 안 부는 건 아니다. 소비세 인상 방침을 밝힌 이후 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의 소비세 인상 계획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국민이 63%로 '평가한다'(21%)는 국민의 3배에 이른다. 이성적으론 소비세 인상을 이해하지만,당장 내 호주머니에서 세금을 거둬가겠다고 나서자 본능적 조세저항이 발동한 것이다.

역풍을 뚫기 위해 간 총리는 증세로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호소했다. 세금 인상으로 늘어난 예산을 노인간병 의료 등에 집중 투자해 고용을 창출하면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소위 '증세를 통한 성장론'이다. '증세=분배''감세=성장'이란 전통적 구분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이라고 간 총리는 역설한다.

귀가 솔깃한 논리다. 그러나 거기엔 전제가 필요하다. 정부가 세금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조건이다.

역대 정권의 재정운용은 비효율적이었다. 지금의 민주당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중학생 이하 자녀 1인당 무조건 한 달에 1만3000엔(약 17만원)씩을 나눠주는 자녀수당이나 고속도로 무료화,고교 무상교육과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무더기로 도입한 게 민주당이다. 세금을 올리겠다면서도 이런 정책을 수정하거나 폐지해 예산을 아끼겠다는 말은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일본 국민들이 간 총리의 '증세 성장론'을 반신반의하는 이유다. 소비세 인상이 간 총리의 정치적 무덤이 될지 여부는 참의원 투표소를 찾아가는 일본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도쿄=차병석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