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도 시중자금은 은행으로만 몰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깊어지고 주식시장 역시 박스권에서 지루하게 움직이고 있는 탓이다.

은행으로 흘러들어간 돈은 평소 같으면 기업이나 가계 등 실물경제 쪽으로 풀려나가 윤활유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가계대출은 주택대출 규제에 꽁꽁 묶여 있고,기업대출은 구조조정 등으로 부도 위험이 커진 상태다. 이 때문에 갈 곳을 잃은 돈이 증권사의 머니마켓펀드(MMF) 등 안전한 금융자산 쪽으로 움직여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현재 은행의 저축성 예금 잔액은 713조4000억원으로 5월 말에 비해 12조3000억원 이상 늘었다. 은행 저축성 예금은 올해 초 은행의 고금리 수신 경쟁으로 1월 21조5000억원,2월 14조원 등 두 달 동안 35조5000억원 증가했고,3월엔 9000억원가량 감소했으나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4월에는 8조6000억원 늘어나고 5월에 22조원 증가하는 등 급증 추세다. 상반기 중 은행 저축성 예금은 모두 77조8000억원 늘었다.

이 같은 자금 흐름은 예금 금리가 떨어지는 추세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의 저축성 수신 금리는 1월 연 3.87%에서 5월 연 2.89%로 무려 1%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예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크게 줄었는데도 돈이 예금에 몰린 것은 경쟁 관계에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의 기대수익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들은 올해 상반기 중 주식형 펀드에서 10조원을 빼냈다.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넘어설 때마다 환매를 요청,주식 투자자금을 회수해갔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남유럽 재정위기 사태 이후 위험자산 기피 심리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펀드 자금도 남유럽 위기를 거치면서 추세적으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이동 역시 '올스톱' 상태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2월 말 이후 19주 연속 하락했다.

은행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은행의 대출 증가액은 가계 6조7000억원,기업 13조8000억원이 전부다. 나머지는 증권사의 MMF와 채권형 펀드로 운용하거나 국공채 매입 등에 투입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