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6~27일 토론토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를 방문하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G20 정상회의에서 절상 압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돼온 위안화 가치와 관련,지난 19일 중국인민은행을 통해 절상 시사 성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외톨이나 트러블메이커가 되길 원치 않음을 보여준 행보"(로이터통신) "글로벌경제의 불균형 해소에 노력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줬다"(인민은행)는 분석이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 2년간 실질적으로 운용해온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를 복수통화바스켓에 기반한 관리형 변동환율제로 되돌린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압박 해소 그 이상의 전략적 의미가 있다. "지속성장을 위해 성장모델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차이나데일리)이라는 평가도 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중국 경제

리커창 중국 부총리는 22일 정치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회가 12차 5개년계획(2011~2015년)을 주제로 가진 회의에서 "중국은 경제발전 방식을 빨리 바꿔야만 지속성장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 분쟁,자산 버블,연쇄 파업 등 경제 · 사회불안이 불거지면서 개혁 · 개방 30년의 고성장을 받쳐온 발전모델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정책은 경제발전 방식 전환의 주요 수단이라는 게 중국 당국의 인식이다. "환율 개혁은 자산 버블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동시에 수출의존도를 낮추고 서비스산업과 소비시장을 키우는 식으로 경제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인민은행)이라는 설명이다. 위안화 절상이 성장동력을 투자와 수출에서 소비로 다원화해 해외 충격에 강한 경제 체질을 만들고,동시에 저부가가치 중국 기업을 강한 기업으로 단련시키는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다. "2005년 환율 개혁 이후 3년간 위안화가 21% 절상되는 동안 수출기업의 기술 수준이 올라가고 기업의 환율 변동 리스크 대응력도 커졌다"는 인민은행의 평가도 있다.

리닝 베이징대 민영경제연구원장도 "병법(兵法)에 사지에 몰아넣어야 비로소 살 수 있다(置之死地而後生)는 말이 있다"며 "기업들이 낮은 위안화에 의존해 수출해온 시대가 끝나고 기술 혁신과 노동생산성 제고 등을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환율정책 변화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수출기업 도산으로 인한 고용 불안과 핫머니 유입이다. 인민은행이 "중소기업에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환율 변동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한 배경이다. "인민은행은 환율이 양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해 핫머니 유입 억제에 나설 것"(위융딩 전 인민은행 통화위원)이라는 대비책도 들린다.

◆빨라지는 기축통화 행보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장기전략에 따라 위안화 절상이 필요했다"(조용찬 중국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번 위안화 절상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달러 기축통화 흔들기에 나선 중국이 위안화를 국제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처럼 세뇨리지 효과(화폐주조권 이득)를 위해 위안화 식민지를 건설하려 한다"(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겸임교수)는 분석도 나온다.

상하이시의 팡싱하이 금융국장이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위안화로 무역결제를 하는 외국 기업이 중국의 주식과 채권 등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하이 내 은행의 해당 계좌에 있는 위안화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위안화 국제화의 큰 걸림돌인 위안화 용도 제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이 중국 증시에 투자하려면 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QFII) 자격을 얻어야 하지만 위안화로 무역결제하는 외국 기업에는 이에 준하는 특혜를 준다는 것이다. 같은 날 인민은행과 재정부 등 6개 부처는 위안화 무역결제가 가능한 대상 국가를 전 세계 모든 국가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위안화의 국제화는 당장 중국의 해외 자원 구매 파워를 더 키울 전망이다. 위안화 절상 시사 성명이 나온 후 첫 거래일인 21일 구리 아연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게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저가 제품 수출로 해외 각국에 저금리를 유도했던 중국은 임금 인상에 위안화 절상까지 겹쳐 이젠 인플레이션을 수출해 각국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