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 화둥사범대 교수, 국내 학술회의서 주장

중국 마오쩌둥 주석의 오판 때문에 한국전쟁의 휴전이 늦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년여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낸 현대사의 비극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이 마오 주석이 판단만 잘 내렸어도 발발 6개월여가 지난 1950년 말께 체결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션즈화(沈志華) 중국 화둥사범대 교수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23일 연세대에서 열리는 '한국전쟁과 동북아 평화: 과거, 현재, 미래' 학술회의에 앞서 22일 사전 배포한 '한국전쟁에서 중국공산당의 오판'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이처럼 주장했다.

션 교수에 따르면 북진하던 유엔군이 중국 참전 이후 후퇴를 거듭해 1950년 12월께 38선까지 전선이 내려갔을 때 여러 방면에서 협상 제의가 있었지만 당시 소련의 압박을 받고 있던 마오 주석이 이를 거부했다.

그는 인도를 포함한 13개국이 당시 중국에 공격을 멈추고 협상하라고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총사령관이던 펑더화이(彭德懷) 역시 38선 이북에서 휴식과 재정비를 취하자고 제안했지만 마오 주석이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또 유엔이 미국보다 중국에 유리하도록 결의안을 고쳐 재차 중국에 협상을 촉구했음에도 마오 주석이 다시 거부한 탓에 중국이 외교, 정치, 군사적으로 고립됐다고 덧붙였다.

션 교수는 전쟁 초기 중국의 목표는 북한을 보호하고 중-소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때 중국이 결의안을 받아들이는 게 중국의 본래 의도에 부합한다고 지적하고, 이후 중국이 오판 때문에 한반도 전체의 해방과 미국의 축출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수립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 당시 중국이 판단을 잘 내렸다면 한국전쟁이 그토록 오랜 기간을 끌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주장인 셈이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한국전쟁이 남북한을 군사주의 국가로 바꿔놓았고, 미국 역시 군산복합체의 나라로 만들었다"며 "결국 미국의 방위산업을 살린 것은 김일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예로 들며 "미국의 지도자들이 한국전쟁의 교훈을 숙고하고 북한과 화해하기 전까지는 한반도가 분단 체제를 유지할 것이고, 새로운 분쟁의 위협에 직면하는 등 동북아가 평화롭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제야말로 한국전쟁을 끝낼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5일 오후 1시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현대한국연구소가 개최하는 '한국전쟁 연구의 새로운 방향: 국내외 경험, 선전 정책 그리고 성격' 국제학술대회가 한중연에서 열린다.

유병호 중국 다롄대 한국학연구원장은 이 학술대회에서 '중국조선족의 한국전쟁 참전 동기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당시 조선족들이 중국 군대에 섞여 참전하게 된 이유를 살핀다.

그는 사전 배포한 발표문에서 조선족은 본래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이 많았던 데다, 중국공산당이 토지개혁을 통해 조선족과 한족에 동등하게 토지를 분배한 반면 국민당은 조선족을 탄압하는 일이 많았고, 조선족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내에서 조선족의 입지를 굳혀 민심을 얻는 등의 이유로 전쟁 발발 전부터 조선족들이 북한을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조선족이었기에 전쟁이 발발하자 '민족혁명을 완수하고 도망한 친일파를 청산하는 것'을 자신들의 임무로 여겨 적극적으로 참전했다는 것이다.

이완범 한중연 교수는 '한국전쟁', '6.25전쟁', '6.25사변' 등으로 다양한 한국전쟁의 명칭을 나열하고, 이중 '6.25전쟁'이 가치중립적이라는 내용을 발표한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