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부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실채권을 매입'해 주기로 한 정부 방침이 최근 며칠 사이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저축은행 부실채권 처리의 실체는 단순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구조조정기금을 통해 저축은행이 갖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을 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캠코 관계자는 "구조조정기금은 국회의 지급보증을 받은 채권 발행을 통해 조성된 만큼 논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명백한 공적자금 투입"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업계는 "대놓고 반박할 처지가 아니다"라면서도 수긍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공적자금 투입=자본잠식 회사'로 받아들이는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금융당국이 용어 선택에 좀더 세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부실채권 매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다"며 "금융당국이 마치 저축은행 전체를 도덕적 해이에 빠진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실채권 매입은 사후정산 또는 유동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채권을 장부가격과 유사한 가격에 인수한 뒤 실제 시장가격과의 차액은 약 3년에 걸쳐 저축은행이 갚아야 한다. 유동화도 마찬가지다. 부실채권의 가격을 산정,유동화 증권(ABS)을 발행해 선순위 채권은 캠코가,후순위 채권은 저축은행이 떠안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나 정부가 손해를 본 일은 없다.

지난해 캠코가 구조조정기금을 통해 인수한 부실채권 규모는 1조7000억원이다. 여기에는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시중은행 채권도 포함돼 있다.

일부에서는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용어 사용을 부실채권 매각에 소극적인 저축은행을 압박하고 저축은행 대주주의 경영책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정부의 사전 여론작업 차원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의 저축은행 예금보호기금은 마이너스 3조원이다. 저축은행 한 곳이라도 영업정지를 당할 경우 정부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