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관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는데도 친아버지로 의심되는 사람이 무조건 부인하며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 감정 없이도 부녀관계를 인정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5단독 이현곤 판사는 20일 A씨(55 · 여)가 자신을 법적인 딸로 인정해 달라며 B씨(82)를 상대로 낸 인지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모친이 B씨와 교제하는 과정에서 원고를 출산했고,A씨가 성장한 후 피고와 만난 사실이 있으며,A씨 모친이 법정에서 친자관계에 관한 사항을 증언했음에도 B씨가 이를 부인하기만 할 뿐 유전자 검사 요구에 계속 응하지 않았다"며 "둘 사이에 친자관계가 있고 B씨 역시 이를 사실상 인정했음이 분명해 원고와 피고 사이에 법률상 부녀관계를 형성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B씨가 이를 부인하고자 한다면 유전자 검사에 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A씨가 50여년간 인지청구를 하지 않아 친자관계를 포기했고,이제 와서 상속권을 노리고 인지청구를 하는 것은 권리의 남용이라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인지청구권은 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며 원고가 권리를 남용하는 것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