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시는 와인은 보르도 포이약의 전설적인 2등급 와인 피숑 롱그빌 바롱 2002년산입니다. 포이약은 보르도 메독에서도 가장 강하고 화려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독 그랑크뤼 1등급 와인 5개 중에서 3개가 포이약의 와인이고요,지금 드시는 롱그빌 바롱은 2등급 와인이지만 종종 1등급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맛을 낸다고 하여 '슈퍼세컨드'라고 불리는 와인입니다. " (회장)

"이거 얼마예요?" (회원A)

"보통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주문하시면 대략 50만~60만원 이상은 내셔야 합니다. 몇 달 전 ○○숍에서 행사할 때 ○○만원에 나왔길래 시음회 때 쓰려고 미리 사놓은 것입니다. " (회장)

"비싼 와인 싸게 샀네.분명 맛이 있기는 한데,이 가격이라면 당연히 맛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회원A)

"난 사실 이것보다 바로 전에 마셨던 게 더 맛있는 것 같아." (회원B)

"그건 값이 거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되잖아.그게 더 맛있다고?" (회원C)

대한항공 와인동호회의 시음회 때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다. 일반적인 와인동호회 정기모임이나 시음회와는 무엇인가 살짝 다른 느낌이다. 와인의 등급이나 명성보다는 '내게 맛있는 와인'과 '내가 마실 수 있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오간다.

대한항공 와인동호회는 와인을 좋아하거나 와인에 흥미를 가진 사내 직원들의 모임이다. 2001년 스튜어디스가 주축이 돼 결성됐으며 2003년 일반직 직원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현재 회원은 160명가량이며,월 1회 정기 시음회에는 보통 15명 정도 참석한다. 시음회 주제선정부터 와인구매,자료준비까지 자체적으로 준비하며 일년에 2~3회는 국내 와인박사 1호로 알려진 대한항공 기내식 방진식 박사의 강의를 듣기도 한다.

"동호회의 목적은 회원들이 다양한 와인을 마셔볼 수 있는 경험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와인에 대한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국내 와인숍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도 맛볼 수 있습니다. " (동호회장 김영래)

정기시음회에서 접하는 와인은 회당 5~6종.시음회를 준비할 때 전에 마셨던 와인들은 가능하면 피하다 보니 연간 60~70종의 와인을 접하는 셈이다. 마셨던 와인들을 하나하나 머리로 기억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그 경험은 분명히 몸에 남아 있다. 동호회에 가입한 지 2년이 된 도새로나 사원은 "지금까지 마셨던 와인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떤 것이 좋은 와인인지,내 취향에 맞는 와인인지 알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와인을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와인에 대한 것뿐일까. "그렇지 않다"고 부회장 신혜정 대리는 이야기한다.

"회사 이야기에서부터 음악,영화,드라마,심지어 아이돌 그룹 이야기까지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말 많은 주제들이 나옵니다. 이제는 회원들끼리 친해져서 개인적인 이야기도 꽤 많이 하는 편이고요. "

동호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예절은 '와인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와인은 제각각의 맛을 갖고 있는 신기한 술인 만큼,한 잔을 마시는 것 만으로도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대한항공 와인동호회 사람들이다.

김영래 < 와인동호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