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ADVERTISEMENT

    "화가 돕고 직원 상상력 자극…이게 아트마케팅이죠"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백운갤러리 통해 미술 메세나 펼치는 이충희 듀오 대표
    "화가 돕고 직원 상상력 자극…이게 아트마케팅이죠"
    서울 청담동 '듀오' 본사 건물 5층 백운갤러리 전시장.그림을 짊어진 젊은 여성화가 한 명이 벽면에 그림을 디스플레이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제가 살던 방까지 젊은 화가에게 작업실로 내주며 시작된 전시회가 벌써 3회째네요. 감회가 새로워요. "

    이탈리아 명품 패션브랜드 에트로의 한국사령탑인 이충희 듀오 대표(56)는 미술분야에서 메세나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최고경영자(CEO)다.

    올해 초 '아트 사랑방' 역할을 하는 백운갤러리를 설립한 이 대표는 지난 8일 기자와 만나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유망한 신진,중견 화가들을 지원하는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21세기 기업 경영에서 미술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트로는 구스타프 크림트의 작품 이미지를 마케팅에 활용합니다.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원래 구두 디자이너였죠.루이비통이 세계적 브랜드로 활기를 띠게 된 것도 일본의 미술가인 무라카미 다카시가 참여하면서부터였어요. "

    그는 "미술과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알찬 기획전을 통해 관람객의 호응을 얻으면서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직원들의 상상력까지 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담긴 명품을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술 마케팅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1993년 에트로의 국내 독점판매권(한국총판)을 자본금 800만원으로 따내 패션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 대표가 미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초.

    "어느 날 절친한 선배가 찾아와 자신이 수집해온 그림을 몽땅 사라고 권하더군요. 원래 제 취미는 우표,문화적 풍물 등 잡다하고 이색적인 물건을 모으는 것이었던 만큼 선뜻 내키지 않더군요. 그런데 생전에 윤리 교사이면서 엽전과 동경(거울) 컬렉터였던 부친이 생각나 김기창을 비롯해 강요배,전병헌,이응로 등 근현대 작가 작품 30~40점을 한꺼번에 사들였죠."

    듀오는 명품에는 영역의 한계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국내 유망 작가들을 아트디렉터로 기용해 장기적으로는 무라카미에 버금갈 정도의 월드 아티스트로 키운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중견 작가 김석기씨를 비롯해 권영범,김보경,최현미,성영록,모용수씨 등 국내 작가에게 더 많은 전시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성영록과 김보경씨를 우리 회사 전속 작가로 선정했고요. 매년 8회 정도 기획전을 열어 줄 계획입니다. "

    일차적으로 전시 공간을 통해 아트와 상업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과 만남을 통해 회사의 활력을 북돋울 방침이다.

    "제 집무실을 비롯해 사무실,회의실에는 그동안 수집한 그림을 걸어놨어요. 직원들에게 돈보다는 예술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죠."

    이 대표의 예술 사랑은 본인의 기부 정신과 관계가 깊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주말이면 인사동을 찾아 그냥 마음에 내키는 무명 화가들의 작품을 사주곤 했다. 그림에 투자하기보다는 감사와 나눔을 실천한다는 뜻에서다.

    실제로 나눔의 정신은 듀오의 성장 원동력이다. 경기대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2002년부터 백운장학재단을 세워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줬다.

    이 같은 사회공헌 활동으로 그는 2008년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이 수여하는 코멘다토레 문화훈장을 받았다. 2012년 론칭 20주년 기념식에선 그동안 백운갤러리를 거쳐간 화가들의 그림을 팔아 불우이웃을 도울 예정이다. 부친이 컬렉션한 동경과 엽전을 전시할 '거울박물관' 설립도 준비 중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15분간 박수갈채...콘서트 오페라 새 역사 쓴 정명훈의 <카르멘>

      "직업 군인 출신의 한 남성이 헤어진 전 동거녀를 흉기로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피해자로부터 새로운 연인과의 만남을 시작하겠다며 결별을 통보받은 그는, 집요한 스토킹 끝에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사회 뉴스에서 접했을 법한 이 비극적 이야기는 조르주 비제(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의 결말을 요약한 것이다. 집시, 군인, 밀수꾼, 투우사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신화 속 인물이나 역사적 영웅이 아닌, 현실의 인간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장 자주 상연되는 프랑스 오페라가 됐다. 부산 콘서트홀 무대에 콘서트 버전(콘체르탄테) 오페라 <카르멘>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국내 오페라 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테너 이용훈에게 쏠렸다. 세계 최정상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신뢰받는 돈 호세 역의 대표 주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2027년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부산에 오페라의 DNA를 심겠다”고 공언한 정명훈 감독이 직접 지휘봉을 든다는 점은 이 공연에서 단순한 콘서트 오페라 이상의 사건이 발생할 것을 예상케 했다.지난 19일과 20일 부산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콘서트오페라 '카르멘'은  한국 오페라 역사상 원작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공연으로 기록될 만한 무대였다. 인물의 설정과 가창에서 기존 국내 프로덕션과 뚜렷하게 차별화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카르멘은 흔히 떠올려지는 억척스럽고 과장된 팜 파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었다.몰도바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미셸 로지에의 카르

    2. 2

      "수배합니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에 숨은 옛 작곡가의 작품을

      이 글은, 50년째 한 선율의 정체를 탐구해 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처음에 그는 이 선율의 실체를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다 풀지 못한 실마리를 그는 지금까지도 찾아 헤매고 있다.시작은 이렇다. 반세기 전, 1975년쯤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당시 오후 다섯시 반에 시작되던 정규 TV 방송의 시작 시간을 기다리는 ‘텔레비전 키드’였다. 오늘과 같은 사교육 열풍이 없던 한가로운 시절이었다.정규방송에 앞서 화면을 기하학적 무늬가 채우는 ‘화면조정 시간’이 있고, 그 뒤 관현악곡 두 곡이 연주됐다. 아마도 ‘오늘의 방송순서 안내’를 시작하는 음악과, 이어 정규방송이 시작됨을 알리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는 제목을 알고 있었다. 들리브의 발레 음악 ‘코펠리아’ 중 ‘차르다슈’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제목을 알 길이 없었다. 트럼펫과 현악 합주가 함께하는, 경쾌한 듯, 장엄한 듯도 하고, 당당한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레스피기 관현악 모음곡 ‘새’ 중 전주곡]그 일은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의식의 표면 아래로 들어간 그 선율이 다시 표면으로 떠오른 것은 1977년,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여름이었다.당시 서울에서는 주네스 뮈지칼(Jeunesses Musicales·국제청소년음악협회) 세계 총회가 열렸다.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 국립극장에서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렸다. 국영 TV 방송은 행사와 청소년들이 콘서트를 연습하며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했고,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뒤에는 국립극장에서 열린 콘서트가 잇따라 화면

    3. 3

      로봇과 신 사이의 음악, 시나위가 여는 찰나의 영원

      시나위를 한다는 것은 곧 디오니소스가 되는 것이다여기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역설이 있다. 소리가 아니면서 소리가 되기, 음악이 아닌 것이 음악이 되기, 그 자신이 아닌 것이 됨을 통해 바로 그 자신이 되기. 정신을 잃으면서 동시에 바로 그 정신을 부여잡기. 길을 잃으면서 동시에 길을 찾는 소리의 음악, 길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길을 감추는 시각의 영상. 그런데 이 모든 역설의 의지와 불가능의 추구가 시나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시나위의 정신은 그렇기에 다시금 디오니소스의 초상에 가닿는다. 소리는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물질화하고, 움직임은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몸짓을 가시화하며, 영상은 비청각적인 방식으로 시각을 청각화한다. 무엇보다 공연의 중심은 소리이나, 그 중심은 또한 그 스스로가 주변이 되며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흩어진다. 흩어진 가락과 부서진 장단, 시나위는 그렇게 디오니소스를 부르는 초혼의 굿이 된다.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여기서 “디오니소스 로봇”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디오니소스와 로봇은 그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일 뿐인가. 로봇으로서의 삶은 디오니소스와의 접신으로 극복되거나 폐기될 수 있는가, 로봇을 재생산할 뿐인 체계는 그저 디오니소스라는 해방구를 통해 지양되어야만 할 무엇인가. 우리는 이 공연의 표제와 형식을 통해 바로 이 “디오니소스 로봇”의 양가성을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로봇이냐 아니냐, 디오니소스냐 아니냐의 양자택일적 물음이 아니다. 물론 “디오니소스 로봇”의 명명이 일차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기계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 기계로부터 탈피할 것인가 하는 문제임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