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하나의 기업으로 바라본다면 천년을 이어온 역사상 최강의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어떻게 천년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로마의 성공 원동력은 '개방성,리더십,체계적인 시스템,철저한 실력주의'였습니다. 이는 21세기의 조직과 리더들이 벤치마킹하기에도 좋습니다. 로마는 사회 개방성이란 철학을 정책으로 만들고,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천년제국을 누릴 수 있었죠.그 리더십은 어떻게 형성됐을까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죠.로마 7대 임금인 타르퀴니우스는 능력은 있었지만 거만했고,소통이나 통합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원로들에 의해 결국 쫓겨났고 새로운 정책을 고민하던 이들은 왕의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선거를 치릅니다. 두 명의 지도자를 뽑는 것이죠.한 명의 지도자는 1년 중 홀수 달에,다른 지도자는 짝수 달에 통치를 하게 하는 2인 집권정책을 채택했습니다. 먼저 초대 집정관이었던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선출됐습니다.

그런데 쫓겨난 타르퀴니우스가 로마 귀족의 젊은이들과 연합해 쿠데타를 준비하다 발각됐어요. 조사를 해보니 당시 집정관이던 브루투스의 두 아들이 연루돼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로마 국법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되는데,아버지인 브루투스가 재판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졌습니다. 브루투스는 아들들에게 "혐의를 얘기해보라"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브루투스가 다른 사람에게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고 묻자 "반역자에게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채찍질을 하고,도끼로 목을 치라고 나와 있다"고 답합니다. 브루투스가 "어떻게 판결을 내릴까" 물으니 "집정관의 아들인 데다 사전에 발각됐으니 추방하는 정도로 그치자"고 합니다. 그런데 브루투스는 "예외는 없다. 법에 따라 처벌하라"고 판결을 내립니다. 두 아들은 그의 눈 앞에서 채찍질을 당한 뒤 도끼로 목을 잘립니다. 집행과정을 끝까지 본 브루투스는 "이것으로 로마의 국법은 지켜졌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뜹니다. 그 이후 어느 누구도 사정을 봐달라고 호소하거나 편법을 쓸 수 없었습니다.

리더십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죠.'내가 하면 로맨스,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식의 생각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법은 승자의 권리요,강자의 권리입니다. 승자와 강자가 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민심이 확보될 수 없습니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가장 먼저 목숨 바치는 지도자

혈통과 실력을 기준으로 구성된 로마의 지도자층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바치는 희생정신에서도 앞섰기에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753년 로마 건국 이후 왕정부터 공화정에 이르는 700여년의 기간 동안 로마 정치의 중심은 귀족들로 구성된 원로원에 있었습니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그가 소집한 100명의 장로들이 왕과 집정관을 배출하는 국가지도층이 된 것입니다. 건국 당시 원로원 의원 100명을 구성했던 로마의 전통 깊은 귀족층은 500년 뒤에 그 숫자가 20% 이하로 줄게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지도층이 가장 먼저 무기를 들고 나가 앞장서 싸웠고,그래서 가장 많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67년에는 국가 요직이 평민에게도 개방됩니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는 체제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귀족들이 전통적으로 쌓아왔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치는 평민층에게도 이어져 내려오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로마를 강하게 유지시킨 핵심적 가치가 됐습니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리더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죠.1차 포에니전쟁 때 로마군 사령관 레굴루스는 카르타고 군에 참패하고 포로가 됐습니다. 카르타고는 레굴루스에게 "로마로 돌아가 원로원에서 자신과의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지시합니다. 만약 실패하면 카르타고로 돌아올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풀어줍니다. 로마로 돌아온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와의 평화조약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나서 카르타고로 돌아가 사형을 당합니다. 조국을 위해 의무를 다하고 적국에도 약속을 지켰던 것입니다.

1차 포에니전쟁이 탐색전이라면 로마 본국에서 한니발이라는 역사적 명장과 싸운 2차 포에니전쟁은 본 게임이었습니다. 한니발에게 연전연패한 로마에는 국가존망의 위기가 닥쳤고,이에 국가 총동원체제로 대응합니다.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원로원 의원 전원이 집을 제외한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모범을 보였고,전시(戰時) 국가채권이 발행돼 무산계급을 제외한 모든 시민들에게 각자의 경제력에 따라 할당됩니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많은 의무를 부담하는 정신자세는 로마가 국난을 극복하는 기본 동력이 됐습니다.

힘의 논리와 힘의 윤리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조직에서도 희생정신과 도덕성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입니다. 더러운 윗물이 깨끗하지 않은 아랫물을 탓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지도층이 조직원들에게 헌신을 요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층의 희생정신은 리더십을 확보하고 국가를 번영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인간이 모여 형성한 모든 조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입니다. 남 앞에 서고 남을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신은 하지 않는 희생과 헌신을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속임수 아니면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힘의 논리'라는 것은 무력과 독재가 아닌 실력주의입니다. 하지만 힘의 논리만 있다면 깡패집단이 되기 쉽습니다. '힘의 윤리'가 동반돼야 리더십 확보가 가능하죠.

우리나라 지도층도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힘의 윤리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사 힘의 윤리가 있었다 해도,힘의 논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무능한 것이기 때문에 존경받는 지도층이 될 수 없습니다. 실력이라는 힘의 논리,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힘의 윤리를 모두 갖추는 리더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정리=이주영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