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는 빛의 투과를 조절해 건물을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차양(遮陽)제품이다. 경기도 광주의 코인씨앤엠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업체다. 해외 60여개국에 이 회사 제품을 취급하는 에이전트들이 있을 정도다. 초대형 알루미늄 블라인드(타공 루버)를 세계에서 첫 개발해 NHN의 신사옥에 설치했고,특수도장을 통해 먼지가 달라붙지 않는 외부차양제품도 상품화하는 등 이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2000년 봄 독일 슈투트가르트.벤츠 본사가 있는 자동차 도시인 이곳에서 세계적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명은 'R+T'.롤스크린 블라인드 창호제품 등을 선보이는 세계 최대 차양제품 전시회다. 이곳에 유일하게 블라인드를 전시한 한국 기업이 있었다. 코인씨앤엠(대표 이계원 · 62)이다.

전시회장에는 성조기와 일장기 등 수많은 국기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나 태극기는 없었다. 한국 회사가 처음 출품한 관계로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계원 대표는 즉각 주최 측에 달려가 항의했다. 조금 있다가 태극기가 게양된 것은 물론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꽂은 태극기

사업을 하는 사람은 바쁘다. 특히 세계적인 전시회에 출품하면 바이어 상담과 고객 응대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비즈니스보다 태극기 게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코인씨앤엠은 60여개국에 연간 10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블라인드 분야의 세계적인 강자로 떠올랐다. 블라인드는 햇빛을 가리는 제품이다. 이 대표는 "블라인드 업계에서 우리 회사를 모르는 업체는 전 세계에 한 곳도 없다"고 설명했다. 수출지역은 동남아를 비롯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과 미국 캐나다 멕시코 볼리비아 등 미주,호주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5대양 6대주에 걸쳐 있다. 이들 지역엔 모두 코인씨앤엠 제품을 취급하는 에이전트들이 있다. 전시회 등에서 코인씨앤엠 제품에 반해 자발적으로 대리점으로 나선 업체들이다.

이 회사의 총매출(자회사인 코인상사 포함)은 연간 약 600억원에 이른다. 국내에 블라인드를 설치하거나 납품한 곳은 6성급 호텔인 워커힐 W호텔을 비롯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신축 세브란스병원,1 · 2 · 3차 타워팰리스,강남성모병원 신축 병동 등 수백곳에 이른다. 이 대표는 "블라인드 내수시장을 40%가량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는 전형적인 다품종 소량 생산제품이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의 종류는 다양하다. 규격 · 재질별로 다를 뿐 아니라 디자인과 컬러도 상이해 이를 전부 감안하면 수천 가지에 이른다.

◆고급 블라인드 수입대체 '선구자'

생산과정도 아주 복잡하다. 철로 된 부품이 있는가 하면 플라스틱 사출 부품도 있다. 블라인드 천은 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든다. 소형 전동모터가 내장돼야 하고 주문자에 따라 수십 가지 다른 종류를 만들어 납품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면 즉각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줘야 한다.

건당 수출액도 수천달러에서 수십만달러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도저히 대기업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 회사 정도의 매출과 수출이면 세계 정상급에 속한다"고 이 대표는 설명한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에 자리잡은 종업원 58명의 코인씨앤엠이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자로 떠오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이 대표의 투철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감이다. 그가 슈투트가르트에서 태극기 게양에 앞장선 데는 까닭이 있다. 이 대표의 할아버지는 만주 상하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한 고 이재근 선생(건국훈장 애국장 수훈)이다. 이 대표는 나라가 힘이 없으면 망할 수도 있으며,국가가 부강해지려면 먼저 기업들이 강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중앙대 통계학과를 나와 1976년 코인상사를 창업했다. 벽지와 장판 커튼 유통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고급 블라인드가 전량 수입돼 시공되는 것을 보고 외국제품을 대체해야겠다며 1996년 수동 블라인드를 국산화했다. 1998년에는 전동 롤스크린,버티컬 블라인드,커튼 등을 내놨다. 3년여 동안 연구 끝에 이들 제품을 선보였다.

둘째,다양한 신제품과 디자인의 개발이다. 이 회사는 이화여대 미술대학원 출신의 안혜영씨를 비롯 8명의 디자인 및 연구개발 인력을 두고 매년 1000여종이 넘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한다. 연구개발 인력은 이 회사 전체 종업원(58명)의 14%에 이른다.

이 회사는 분당 NHN 신사옥(일명 그린 팩토리)에 설치한 초대형 알루미늄 블라인드(타공 루버)도 세계에서 처음 개발했다. 이 제품은 기존 수평형 블라인드를 수직형으로 바꾼 것으로 크기가 가로 50~60㎝,높이 4~6m의 초대형 제품이다. 이 대표는 "기존 블라인드보다 10배 이상 큰 대형제품은 세계에서 처음 개발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품은 직경 2㎜의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 간의 간격이 달라 빛투과율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방향에 따라 이상적인 조도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 회사는 NHN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이 제품을 개발하면서 앞과 뒤의 컬러가 다르면서 타공 구멍으로 도료가 흘러내리지 않아 깔끔하게 도장되는 특수기술도 개발했다. 일본 기업들이 어렵다면서 포기한 기술이다.

◆타워팰리스 온실효과 방지 기술도 개발

주상복합건물의 온실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외부차양(루버)시스템도 개발해 생산을 시작했다. 블라인드가 내부에 설치하는 것인 데 비해 루버는 외부에 설치하는 것으로 기온 바람세기 건물방향 계절변화를 고려해 자동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대표는 "특수도장을 통해 먼지나 매연 황사가 달라붙지 않고,녹이 슬지 않아 일일이 세척할 필요가 없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가 내리면 먼지나 황사가 깨끗하게 제거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건물에 외부차양을 설치하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지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갖춘 건물은 실내온도가 섭씨 5~15도 정도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반투명 블라인드가 이중으로 돼 있어 외부를 반투명상태로 볼 수도 있고,불투명상태로도 유지할 수 있는 블라인드도 개발해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대표는 34년 동안 커튼과 블라인드 등 차양제품 외길을 걸어오면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발명특허 등 80여건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셋째,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이다. 단순히 해외전시회에 출품하는 게 아니다.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을 감안한 디자인으로 승부하기 위해 국내에서 디자인한 제품은 반드시 판매시장,예컨대 독일의 경우 독일 취향에 맞춰 다시 손질한다. 이 대표는 "외국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가치를 알아주고 제값을 쳐주는데 국내는 아직 디자인료에 대한 개념이 없어 아쉽다"며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모든 제품에 디자인 요소가 가미돼야 하고,최고경영자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제품을 모두 자체 제조할 수 없어 국내 30여곳,해외 4곳의 협력업체를 두고 생산한다. 이들 공장에 대해선 최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품 기획과 디자인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산학협력을 총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에너지 절감형 제품 개발에 나서고 외부차양 사업도 강화하는 등 그린 제품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기술을 결합시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세계적인 강소기업을 일궈내겠다"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기 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