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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소백산 자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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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휴에 우리 가족은 소백산 자락길을 걸었다. 우린 모처럼 만의 일이라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소백산 굽이굽이 계곡과 산을 오르며 이제 막 시작한 초여름의 푸르름을 눈이 시리도록 보고 또 보면서 즐거워했다.

    연두,연한 초록,진녹색,짙푸른 빛의 나뭇잎들이 저마다 다양한 초록색을 보여줘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산에는 물푸레나무,졸참나무,산초나무,국수나무,물오리나무 등이 서 있었고,산속 길가에는 쥐오줌풀,토끼풀,둥글레풀,큰괭이풀,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과 풀이 저마다 잘 자라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흠뻑 취하기도 하고,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실컷 들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요즘엔 걷고 싶은 길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이러한 유행은 신선한 것이어서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걷다보면 어지러워진 마음이 가라앉고,복잡하고 불편한 심사가 너그러워져 남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또 한참을 걷다보면 마음이 비워져 편안함도 느낄 수 있다.

    며칠 정도 온전히 자신의 세계에 몰입해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타성의 껍질과 두껍게 쌓인 어리석은 생각도 조금은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다보면 순수한 마음이 돼 영혼의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일도,걸으면서 내면을 비워내는 것도 모두 적극적인 자기 성찰의 방법이다.

    나에게 길은 추억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다. 아주 어렸을 때 학교 가는 길은 참으로 난감했다. 학교까지 그리 먼 길은 아니었지만 골목 중간에 거름더미가 있어 비가 오면 가끔씩 곤욕을 치렀다. 깨끗이 씻은 고무신을 신고 가다 더러운 것을 밟기도 해 거의 울상이 된 적도 있고,비 오는 날엔 발에 물이 튀는 것이 싫어 거의 까치발을 하고 걷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땐 멀지만 더 넓은 길로 다녔다. 큰길로 나오면 신작로가 있어 버스들이 달렸고 나는 버스 뒤를 따라가며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그 길 끝 간 곳을 늘 궁금해 했다. 산 너머의 세상을 꿈꾸면서 그 꿈은 한없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닐까봐 두려워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이젠 그 더럽던 길도,투덜거리며 걷던 자갈길도,올라가기 힘들어 짜증 나던 언덕배기 골목길들도 한없이 그리워진다. 내가 걸어온 길들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고 그리워하듯,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도 꿈꾸며 또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소백산 산자락마다 조성된 자락길을 걸으면서,특히 옛 선조들을 따라 죽령옛길을 지나가면서 내 인생의 행로를 생각하며 잠시 쉴 수 있었다. 그 길에서는 앞서서 하는 걱정거리나 사소한 마음의 상처는 끼어들 틈이 없었고 갈 길을 찾아 먼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있어 고마울 뿐이다.

    문정숙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mooncs@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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