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있는 전자부품회사 삼화콘덴서(대표 황호진)는 2007년 고용량 콘덴서 '캐퍼시터' 개발을 앞두고 무려 7개월 동안 관련 제품의 특허지도(patent map)를 만드느라 공을 들였다. 캐퍼시터에 대한 기술 및 출원인 · 기술 분포 동향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특허지도는 관련 제품 최강국인 일본의 특허장벽을 넘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이 회사는 이후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초고압 내부전극 형성기술 등을 접목시킨 캐퍼시터를 개발하고 원천기술에 대해 특허를 등록했다.

삼화콘덴서는 지난해부터 '특허경영'의 과실을 맛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일본에만 100억원어치를 수출한 데 힘입어 전년 대비 250억원 늘어난 119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LCD TV 고압 · 고주파 캐퍼시터 시장에서 파나소닉 등 일본 대기업들과 경쟁하고 있지만 발빠른 특허경영으로 한발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황호진 삼화콘덴서 대표는 "곧바로 상품화할 수 있는 강한 특허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대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삼화콘덴서는 현재까지 66건을 특허 출원했고,이를 이용해 6개의 신제품을 개발했다.

'특허경영'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화두가 되고 있다. 자체 글로벌 경쟁력 배양과 함께 최근 해외 특허괴물(patent troll)의 타깃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확대되면서 시장 철수,반품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한 중소기업의 특허 출원이 늘고 있다. 올해 1분기까지 중소기업의 특허출원 건수는 4991건으로 전체의 15.5%에 달하고 있다. 대기업 출원 건수는 7372건(22.9%)이다. 과거에는 외국 기업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반덤핑 제소가 주류를 이뤘지만,최근에는 특허소송이 자국 기업 보호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의 국제 특허출원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기업과 관련 미국 무역위원회(ITC)가 제소한 10건은 모두 특허침해 관련 사건이었다.

현재 특허 등 지식경영이 기업들의 경영 현안이 되고 있지만,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특허 경쟁력은 아직 열악한 수준이다. 특히 연구개발(R&D) 투자비용에 비해 핵심 · 원천 · 표준 특허 등 '돈 되고 강한 특허'가 부족하고,이는 곧바로 기술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 기업과의 지식재산권 분쟁 증가로 특허사용료 적자금액이 1990년 13억달러에서 2009년 39억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김태만 특허청 산업재산정책과 과장은 "연구개발의 결과물이 특허권이란 기존 생각을 탈피해 이제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이 연구개발을 이끈다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식재산과 연구개발의 연계 강화가 R&D 투자 효율을 높이고,궁극적으로 국가의 지식재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허청은 지재권 중심의 기술 획득 전략을 전파하기 위해 IP(지식재산)-R&D 연계 지원기관인 'R&D 특허센터'를 설립,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국내 118개 대표 대 · 중소기업이 지식재산 경영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최강 지재권 포트폴리오 갖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