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탄생 200주년…그의 '연습곡'엔 피아노 혁명 녹아있다
17세기만 해도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코드나 하프시코드는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는 악기였다. 우아하게 보이는 것이 목적인 악기 연주에 못생긴 엄지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건반악기는 바흐와 스카를라티에 이르러 표현의 폭이 확대됐고 베토벤에 의해 '악기의 제왕'이 됐다.

몇 년 후 유럽의 작은 도시들에서 연달아 태어난 세 사람의 천재 덕분에 피아노는 다시 한번 큰 변혁을 맞는다. 바로 프레데리크 쇼팽,로베르트 슈만,프란츠 리스트다.

법학도였던 슈만의 음악적 갈증과 최고의 콘서트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리스트의 야욕을 동시에 자극시킨 인물은 당시 최고의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였다. 공교롭게도 쇼팽이 그의 작품 '에튀드',즉 '연습곡' 작곡에 착수하게 된 것도 파가니니의 연주를 처음 본 1829년이었다. 선대의 바흐와 스카를라티,혹은 크라머,클레멘티,체르니,모셸레스 등이 남긴 연습곡들과는 태생부터 달랐던 것이다.

이들의 연습곡이 말 그대로 집에서 손가락을 단련시킬 목적으로 작곡됐다면 쇼팽은 무대를 상상하며 이 곡들을 썼다. '근육 훈련'을 목적으로 음악을 사용한 것이 이전의 연습곡들이었다면 쇼팽은 거꾸로 음악적 표현을 위해 '연습곡'이라는 형태를 차용한 것이었다.

물론 동료인 슈만과 리스트 역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발상을 했다. 슈만은 1832년과 1834년 사이에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연습곡들과 변주곡 형식의 대곡 '교향적 연습곡'을 완성했다.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 20년 후에 정식 발표를 하기는 했으나 리스트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초절기교 연습곡'의 주제들을 스케치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러나 쇼팽의 '연습곡'이야말로 가장 혁신적이고도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바흐의 '평균율'에서 영향을 받은 듯 작품 10과 25에 각기 열두 개,총 스물네 곡으로 구성된 이 곡들은 각각 아르페지오,반음계,스케일,연타,3도,6도,옥타브,도약 등 뚜렷한 기술적 목적을 한가지씩 지니고 있다.

리스트의 연습곡들이 그의 다른 작품들과 기술적으로 특별한 연관성이 없는 것과 달리 이 기술들은 쇼팽의 다른 작품들에 빈번히 등장한다. 이 기술들을 완성도 있게 연마한 사람은 쇼팽의 다른 작품들도 보다 쉽게 연주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악기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의 가장 큰 가치는 역시 음악적인 측면에 있다. 상당수가 제2의 고향인 파리로 거처를 옮기기 직전에 작곡된 '작품 10'은 쇼팽 음악의 정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 세기를 미리 내다본 듯 인상주의적 색채가 다분한 제6번과 제9번이 고작 스무살도 채 안 된 소년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이탈리아가 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 변방 나라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쇼팽.어느 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그의 음악세계는 서양음악사의 혁명이었다. 그가 시도했던 피아노 혁명이 모두 녹아 있는 곡이 바로 '연습곡'이다.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쇼팽 특집' 중 하나로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20일 열리는 내 공연이 그 둘의 접점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