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이동통신사 간부로부터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개발 경진대회에 돈 좀 썼다"는 말을 들었다. 자사 앱스토어에 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올라오도록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하지만 상당히 놀랐다. 애플이 앱스토어로 성공한 진짜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아 답답했다. 왜 굳이 경진대회를 열었을까? 개발자들이 몰려들 환경만 조성해주면 되지 않는가.

며칠 전에는 휴대폰 제조업체 고위 간부가 "6개월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6개월 후엔 애플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믿기지 않았다. 6개월 만에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뭘까. 아이폰보다 성능 좋은 휴대폰을 내놓겠다는 뜻은 아닌지….패러다임이 성능 싸움에서 플랫폼 싸움으로 바뀐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답답했다.

IT(정보기술) 유관부서 고위 공무원이 요즘 트위터에 빠졌다고 해서 반가웠다. 국민의 소리,IT 업계의 볼멘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듣기 위한 트위터가 아니라 말하기 위한 트위터였다. 이 공무원을 팔로(구독)하는 사람은 급속히 늘어 1000명에 근접했는데 그가 팔로하는 사람은 달랑 20여명에 불과하다. 그가 올린 글에는 권위가 느껴진다.

위의 세 경우에 대해 기대를 버린 것은 아니다. 애플리케이션 경진대회를 계기로 개발자(개발사)들이 몰려들 환경을 조성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능 좋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벌면서 완전히 뒤집을 묘안을 내놓는다면 또 얼마나 좋겠는가. 고위 공무원이 트위터에서 잘난 척하다가 점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쪽으로,IT 업계 볼멘 소리를 듣는 쪽으로 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누군가 그랬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쳐다본다고.애플 경쟁사 사람들은 애플의 애프터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애플은 고객이 제품을 맡기면 공장에서 수리한 다른 제품으로 바꿔주는 독특한 애프터서비스를 고집하고 있다. 처음엔 꽤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것은 '손가락'이다. 이런 식의 애프터서비스를 고집하면서도 아이폰이 환영받는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에 대해 '천재'라고도 하고 '외계인'이라고도 하지만 그가 구사한 전략은 단순하다. 고객(소비자)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냈고 파트너(협력사)들이 자발적으로 달려들게 만들었다. 파트너도 고객으로 친다면 '고객을 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단순화할 수 있다. 애플을 벤치마킹하거나 애플을 이기는 전략은 여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필자가 유통업계를 출입했던 10여년 전에도 "고객은 왕이며 고객 말은 항상 옳다"고 했다. 한 대기업은 애프터서비스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아쉬운 건 소비자들이 열광하고 협력사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게 하는 마력이 애플만큼 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근 《고객이 통치한다》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고객이 기업을 통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책을 소개한 글에는 '100만 공무원들아,이 책을 읽어라'란 댓글이 붙어 있다. 기업이든 정부든 '고객(국민)이 통치한다'는 말을 되새겨 볼 때다. 미국이 개방과 협력을 표방한 웹2.0을 기반으로 세계 IT 주도권을 잡은 것도,애플이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뜬 것도 그 핵심은 고객이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