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세대 기업인들의 은퇴가 줄을 이으면서 원활한 가업 승계가 중소기업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지 한 기업의 유지 · 존속 문제가 아니라 고용과 내수경기 활성화,수출 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독일 일본 등도 같은 고민에 빠져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중소기업주간을 맞아 본지는 김낙훈 중기전문기자의 사회로 김동선 중소기업청장,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윤용로 기업은행장,이장우 중소기업학회장과 함께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 방안 마련을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는 지난 12일 서울 63빌딩에서 이뤄졌다.

▼김낙훈 한국경제신문 중기전문기자=정부의 지원책(상속세 산출 시 상속 재산 가운데 최대 100억원까지 공제)이 나온 후 가업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현장에서 보면 가업 승계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1세대와 2세대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부모는 피땀 흘려 이룬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다 보니 신세대들의 느슨한 생활패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경영이 구태의연하게 느껴진다. 소통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기업을 방문해 보면 아직 상속세 등 정부의 지원책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독일이나 일본 등의 가업 승계 지원제도와 비교하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올해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가 일자리 창출인데 신규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일자리 지키기'도 중요하다. 1세대 기업인들이 이뤄놓은 기업이 2세대에도 유지,발전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강화돼야 한다.

▼이장우 중소기업학회장(경북대 교수 · 이하 이 교수)=인구통계학적으로 가업 승계는 매우 시급한 과제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현재 기업인들의 60%가 경영권 승계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고령화돼 있고 이 중 75%는 자식한테 물려줄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중소기업이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50%에 달했지만 지금은 35% 수준이다. 서비스업 발전을 얘기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제조업을 포기하고 서비스업 발전만 모색하다 보면 집토끼,산토끼 다 놓치게 된다. 기업은행이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다. 한국의 산업 발전이 이제 50년째에 접어든다는 얘기다. 경영 1세대들이 이제 은퇴를 본격화화는 시기다. 기업은행 거래 고객 19만곳 중 60대 이상 CEO가 12%에 이른다. 가업 승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10년 안에 가업 승계가 원활히 정착되지 않으면 제조업 기반은 무너진다.

▼김 청장=성장을 위해서는 사업을 전환해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 가업 승계는 이를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세대들은 한우물만 파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2세대들이 승계를 하면서 미래산업 아이템으로 바꾸고 글로벌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기업을 위해 중기청에서는 사업 전환 시에 컨설팅과 자금 지원 등을 추진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김 회장=작년 여름 중기중앙회에서 일본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를 초청해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오마에는 일본 젊은이들이 가업 승계에 거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일본은 연간 7만개의 기업이 후계자가 없어 폐업하는 실정이다. 그는 한국 역시 첫 가업 승계 시기가 도래했는데 잘 정착된다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강조했었다.

▼김 기자=원활한 가업 승계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무엇인가.

▼이 교수=무엇보다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사회적 시각이 있다. 기업에 대한 책임감과 경영 노하우,철학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김 회장=과도한 승계 비용도 문제다. 현 정부 들어 상속세 산출 시 상속 재산 공제 한도를 100억원까지 확대하면서 의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상속세 납부를 위해서는 주식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주식 매각 시까지 세금을 유예해준다면 가업 승계가 더 원활해질 것이다.

▼김 청장=맞는 얘기다. 한 명문장수기업인상 수상 업체 대표는 "장부가액을 가지고 과세하다 보니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 쉽지 않다"며 "수익 실현 때까지는 과세를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얘기했었다. 정부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김 기자=선진국의 가업 승계 지원책에 대한 벤치마킹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과 일본은 가업 승계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김 회장=우리 기업 현실을 비춰볼 때 독일식 가업 승계 방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독일은 상속 후 10년간 종업원 연평균 급여총액이 상속 전의 급여총액 수준을 유지하면 사업용 자산 전액을 공제해준다. 가업 승계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 영속성도 중요하다. 독일식으로 고용을 유지하면 감면액을 늘려주는 방식이 적합하다.

▼이 교수=독일은 가업 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을 위해 '넥스트(NEXXT)'사업을 시행해 우호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도 그런 프로젝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특유의 교육지원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이 역시 보완적 정책 도구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 청장=일본 독일은 허리기업이 많은데 작년부터 가업 승계와 관련된 제도 개선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고용 창출과 지속적 성장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서둘러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고경봉/강은구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