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금호의 어머니가 '남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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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부터 빈소가 차려졌다. 조문객은 줄을 이었다. 한둘, 또는 너댓이 같이 오면 친지나 정관계 인사였고 20~30명씩은 계열사 임원들이다. 직전에 있었던 전경련 회장단 회의를 마치고 온 재계 회장들도 곧바로 빈소를 찾았다.
빈소 안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이 맨 안쪽에 앉았다. 이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그리고 박종구 아주대 총장이 자리를 했고 세명의 사위, 그리고 맨끝에는 박삼구 명예회장의 아들 박세창 상무가 앉았다.
박삼구 명예회장은 말이 없다. 자리에 앉았다가 조문객이 오면 서서 인사를 했다. 조문객은 줄을 이었고 사실 앉을 틈은 거의 없었다. 명예회장은 종종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무 자주 그래서 흔히 하는 표정인 듯 했다. 박찬구 회장도 말이 없다. 조문객이 오면 따라 일어나 인사를 했고 조문객이 가면 앉았다. 조문객이 없을 때는 가끔 멍하니 영정을, 가끔 멍하니 빈소 밖을 바라봤다.
밤이 깊고 잠시 조문이 뜸하자 박삼구 명예회장이 지쳤는 지 빈소 옆 상주 대기실로 갔다. 아들인 박세창 상무가 따라 들어갔다. 조금 더 있다가는 박찬구 회장이 같은 방으로 갔다. 문틈으로 보이는 대기실에는 친지 한 사람이 한참을 얘기한다. 무슨 얘기인지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표정은 토론이라도 하는 듯 진지하다. 맞은 편에는 박삼구, 박찬구 형제가 있을 게다. 듣는지 마는지.
故 이순정 여사는 10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故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회장과 함께 슬하에 5남3녀를 뒀다. 여사는 창업회장이 금호고속을 키워나갈 때 20~30명의 직원 식사를 직접 해냈다고 한다. 창업회장은 간혹 회사의 성장을 내조의 덕으로 돌렸다.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부군을 따라 같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키워 온 것이다. 금호아시아나의 어머니라고도 할 만 하다.
그러나 지금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름 뿐이다. 지주회사격인 금호산업은 이미 채권단이 최대주주이고 그룹의 알짜인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은 금호산업 밑에 있다. 다음주면 대우건설 재매각을 위한 실사가 끝날 것이고 채권단은 또 금호타이어 등과 경영개선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박삼구 명예회장은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보장 받았지만 감자로 지분은 거의 없다.
우선은 워크아웃, 또는 자율협약을 체결한 계열사들이 안정화되는 것이 첫째다. 그러나 그 뒤라도 다시 그룹의 지위를 갖기 위해서는 채권단 지분을 되사야 한다. 하지만 적은 돈이 아니다.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MOU는 맺었지만 한가닥 가능성은 금호석유화학이다. 경영권은 박삼구 명예회장과 갈등을 벌였던 박찬구 회장이 가지고 있지만 지분은 형제들이 나눠 가졌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쉽지 않지만 그룹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형제들의 화합이 필수적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계기로 그간 보지 않았던 삼구, 찬구 형제가 한자리에 있다. 싫든 좋든 15일 발인까지는 늘 옆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족의 중심인 어머니의 타계가 말그대로 형제들의 구심점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향년 101세. 천수를 누린 故 이순정 여사. 자식에게 늘 효와 화목을 강조했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반세기 가까이 적십자 봉사회 활동을 했고 20여 년간은 부인회 이사장을 했다. 장애인 장학회를 세우는 등 오랜 봉사의 결과들을 사회에 남겼다.
여사가 이제 마지막으로 그룹의 남길 것. 그것은 이제 형제들이 결정한 일이다.
박성태기자 stpark@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