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금융계 패션의 트렌드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옷을 잘 입는 게 일을 잘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라고, 요즘은 어떤 타이 노트가 세련된 것으로 취급받는 지, 이번 시즌에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어도 되는 지 안 되는 지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고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운 시기에 번쩍번쩍 요란한 커프 링크스를 하고 나타나도 “그건 좀 오버”라고 귀띔해주는 법도 없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당신이 매번 입을 옷을 결정 할 때마다 업계 흐름을 고민한다면, 몇 가지 원칙만 알아두면 일이 쉬워진다. ◇ 원칙 하나. 기본에 충실하라 첫째로, 멋져 보이기 위해 뭔가 색다르고 남다른 것을 시도해볼 요량이라면 당장 그 시도 자체를 접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에는 진갈색 구두에 광택이 없는 회색이나 감색 수트를 기본으로 한다. 흔히 ‘은갈치’로 불리는 광택 있는 정장은 금융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무직 종사자에게 적합하지 않다. 여자는 무릎길이 스커트나 일자바지에 블라우스, 단색의 원피스에 보색 재킷이 기본이다. 너무 짧은 스커트나 민소매는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옳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다. 금융계 여성에겐 그른 것이 참 많다.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과한 펌과 염색, 굽이 아예 없는 플랫슈즈나 킬힐, 클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빈티지 악세서리와 빅백 등. 이 기본을 지키지 않을 경우 마케팅 부서나 홍보대행사 직원으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옷차림만으로도 금융계 조직의 일원이 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선택의 폭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만큼 옷차림이 이렇게 보수적이라면, 도대체 트렌드는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금융업 종사자의 옷차림이란 트렌드를 절제해서 표현할 때 그 멋스러움이 극대화되는 법이다.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 신경쓴다고 누가 알아줄까, 싶어도 모두들 눈치 채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바닥이다. 업계 종사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일을 못하면서 트렌드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많지만, 일만 잘하고 자신을 꾸미지 않는 사람이 없는 곳 또한 여기다. 생각이라고는 하지 않고 잡히는 대로 옷을 걸치고 일터로 향하는 대부분의 화이트칼라들과는 달라야한다는 얘기다. ◇ 원칙 둘. 악세사리를 이용하여 사소한 포인트도 놓치지 말라 그래서 숙지해둬야 할 원칙 두 번째가 ‘디테일’이다. 기본이 되는 수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셔츠, 셔츠보다 가방, 가방보다는 신발, 더 세심하게는 커프 링크스, 타이 노트, 칼라 스테이와 같은 것이다. 심지어 최근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 금융가에서는 타이 클립(넥타이와 셔츠 앞판을 함께 고정시키는 긴 직사각 막대형 핀)이 유행이다. 타이 클립 따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다수 샐러리맨들과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타이 클립까지는 귀찮거나 어색하다면 갈색 스웨이드 구두와 배럴 커프 정도로 점잖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스타일을 내보는 건 어떨까. 개성 표출을 옷 입기의 목표로 삼지 말라는 첫 번째 원칙과 큰 틀 안에서 디테일에 더 많이 신경 써야 한다는 두 번째 원칙만 명심한다면, 금융계 패션 트렌드는 반은 따라잡은 게 분명하다. 타이 주름은 몇 개를 몇 센티미터로 잡아야 하는지, 셔츠는 어떤 색으로 골라 어떨 때 입어야 하는지, 구두 바닥에 고무를 대는 게 맞는지 틀린지에 대해서는 기본 원칙부터 숙지한 후에 이야기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