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과 금융사들은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환율 하락보다는 유럽 재정위기를 기업 경영에 더 큰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 본격적인 출구전략 시행은 올해 4분기 이후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는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삼성 현대 · 기아차 SK LG 등 30대 그룹과 국민은행 대우증권 삼성생명 등 11개 대형 금융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을 대상으로 긴급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유럽 걱정되지만 큰 문제 안 돼"

30대 그룹 및 11개 대형 금융사의 CFO들은 '기업 경영에서 최대 우려 사항'을 묻는 질문에 '유럽 재정위기 등 세계경제 불안 가능성'(39.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쉽게 가라앉을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응답자별로는 금융사 쪽에서 유럽 재정위기를 더 많이 우려했다. 금융사 CFO의 45.5%가 유럽 재정위기를 최대 불안 요인으로 지목한 반면 30대그룹은 36.7%가 유럽 문제를 꼽았다.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금융사들이 더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를 위협할 또 다른 요인으로는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26.8%) '환율 하락'(17.1%) 등이 지목됐다.

응답자들의 대부분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4%대(43.9%) 혹은 5%대(54.7%)로 점쳤다. 성장률이 4%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한명(2.4%)뿐이었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등 여러 위협 요인이 경기회복세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6%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응답자도 없었다.

올해 2분기 이후 경기를 묻는 질문에는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82.9%에 이르렀다. 전년 동기 대비 7.8%의 성장률을 기록한 1분기와 비슷한 속도로 성장할 것이란 응답은 17.1%였다.

◆금리 인상 시기 '천양지차'

바람직한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이 골고루 나왔다. '내년 이후'라고 답한 사람이 36.5%로 가장 많았지만 '3분기 중'과 '4분기 중'을 꼽은 사람도 각각 22%에 달했다. '2분기 중'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도 19.5%였다.

응답자별로는 대기업과 금융사 간 견해가 엇갈렸다. 금융사가 상대적으로 좀 더 빠른 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대기업들은 신중론을 피력했다. 바람직한 금리 인상 시기를 묻는 질문에 30대 그룹은 내년 이후(46.7%),4분기 중(26.7%),3분기 중(16.6%),2분기 중(10%) 등의 순으로 답했다. '조속한 금리 인상'보다 '가급적 늦춰야 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10대그룹에선 이 같은 성향이 더 두드러졌다. '2분기 중 금리 인상'을 택한 응답자는 한명도 없었고 '3분기 중'과 '4분기 중'이 각각 20%,'내년 이후'가 60%였다.

이에 비해 금융사들은 '2분기 중'(45.4%)과 '3분기 중'(36.4%)이 많았다. '4분기 중'과 '내년 이후'는 각각 9.1%에 그쳤다.

이처럼 엇갈린 답변은 업종별 이해관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됐다. 설문에 참여한 한 CFO는 "대기업은 소비 활성화를 위해 금리 인상이 좀 늦춰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은행 등 금융사들은 예대마진 확대를 위해 금리 인상이 좀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경우 적정 수준에 대해 30대그룹은 연 2.5~2.75%(56.7%)를 많이 꼽았지만 금융사들은 연 2.5~2.75%(36.4%)와 연 3.0~3.25%(36.4%)를 똑같은 비율로 꼽았다. 금리 인상폭도 금융사들이 좀 더 크게 가져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30대 그룹은 연 4.0% 이상이 적정하다는 답변이 하나도 없었지만 금융사들 중 27.3%가 연 4.0~4.25%를 제시했다.

◆출구전략 부작용 '반반'

기준금리 인상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대기업과 금융사를 망라한 전체 응답자의 53.7%가 '어느 정도 부정적'이라고 말해 '별 영향 없을 것'이란 답변 비율(34.1%)을 웃돌았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 '출구전략이 시행될 경우 기업의 투자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투자 축소'(43.9%)보다 '별 영향 없을 것'(56.1%)이란 응답 비율이 높았다.

고용에 대한 영향을 묻는 질문에도 '고용 축소'(36.6%)보다 '별 영향 없을 것'(63.4%)이란 응답이 많았다.

우리 경제에서 투자와 고용 측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10대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출구전략 때 '투자 축소'와 '고용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은 각각 40%에 그쳤고 '별 영향 없을 것'이란 예상이 60%에 이르렀다.

금융사의 경우엔 '투자 및 고용 축소'와 '별 영향 없을 것'이란 비율이 각각 9.1%와 90.9%로 나타나 출구전략이 고용과 투자에 사실상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관측했다.

박준동/서기열 기자 jdpower@hankyung.com

◆설문 참여 기업(41개사)=삼성 현대 · 기아자동차 SK LG 롯데(호남석유화학) 포스코 GS 현대중공업 금호아시아나 한진(대한항공) 현대그룹 신세계 CJ 두산 부영 동부 하이닉스 LS 현대건설 동국제강 대림 에쓰오일 효성 한화 KT GM대우 한진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 KCC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