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모니'의 주인공 정혜(김윤진)는 의처증 남편을 살해한 죄로 수감된 무기수다. 교도소에서 출산한 그는 법에 정해진 18개월 동안 아이를 키운 뒤 입양시킨다. 4년 뒤 재소자합창단을 만든 정혜는 아이에게 자신의 공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양부모에게 부탁한다.

완강하게 거부하던 양부모는 공연 당일 우연을 가장해 아이를 만나도록 해준다. 현실은 그러나 영화와 달라 보인다. 우리나라에선 입양 사실을 비밀로 하는 만큼 아이에게 친부모의 존재를 숨기는 까닭이다. 친부모가 찾아올까 자주 이사를 하는 집도 있다는 마당이다.

입양아인 줄 모르거나 알아도 공개하지 않는 우리와 달리 외국에선 입양아임을 스스로 털어놓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가 그렇고 애플 CEO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다. 다나카는 큰아버지 부부에게,잡스는 생판 남에게 입양된 예다.

세계적 인물이 됐지만 두 사람 모두 입양의 상처를 견디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나카는 대학에 입학한 뒤 부모로부터 자신이 실은 친자식이 아닌 조카고 생모는 출산 직후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충격 끝에 방황하다 낙제했다고 털어놨다.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출생 직후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는데 친구 댄 코트키는 그런 잡스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스티브에겐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깊이 박혀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방식은 아무래도 고아 출신이라는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의 성장에 양부모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나카의 부모는 그가 입양됐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사랑을 쏟아부었고,잡스의 부모는 별난 아들 때문에 멀쩡한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오늘(11일)은 정부가 제정한 제5회 입양의 날이다. 많이 달라졌다지만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2009년 총 입양 2439건 중 국외 입양이 1125건이고,미국에 입양된 외국 아동 중 네 번째가 한국아동(1077명)이란 사실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이라는 게 민망할 정도다.

제 자식 제가 키우고 싶지 않은 어미가 어디 있으랴. 해외입양을 줄이자면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최선이다. 정 안되면 이땅에서라도 기르도록 도와야 하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