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가셔브롬Ⅱ봉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8천m 봉우리 등정을 시작한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13년 만인 2010년 4월27일 안나푸르나(8천91m)에 오르며 14좌 완등 대장정을 마쳤다.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프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14좌 완등 과정은 오 대장에게도 자신의 한계에 절망하며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오 대장은 히말라야에 오르면서 수차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운 좋게 살아 돌아왔다.

2006년 시샤팡마 등정 길에 굴러온 얼음 덩어리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을 뿐 아니라 눈사태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앞서 2004년에는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밟고 내려오다가 탈진해 쓰러져 있는 오 대장을 다른 원정대 셰르파가 발견해 텐트 안으로 옮긴 뒤 산소마스크를 씌워줘 겨우 목숨을 건졌다.

오 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잠이 드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산에서 죽기는 싫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에베레스트 원정에서는 또 동료 산악인인 박무택이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독한 년'이라는 비난도 들어야만 했다.

오 대장은 "이미 숨져 있었고 당시 상황이 모두 끝났다"고 말해도 그를 옹호해주는 이는 없었다.

작년 7월 오 대장의 14좌 완등 경쟁자이자 좋아하던 후배였던 고미영 대장이 낭가파르밧에서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도 큰 충격이었다.

오 대장은 고 대장이 숨지기 불과 몇 시간 전 낭가파르밧 정상을 밟고 내려오면서 만났다.

정상 등정에 성공한 오 대장에게 고 대장은 "축하한다"고 인사했고 오 대장도 "잘 갔다 오라"며 격려해줬다.

주위에서는 두 여성 산악인이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라는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다 고 대장이 숨졌다며 비난의 화살을 오 대장에게 돌리기도 했다.

오 대장은 "(고)미영이는 서로 얼마나 힘이 됐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14좌 완등을 위해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 4개 봉우리씩을 오르는 속도전을 펼친 오 대장에게 마지막 남은 안나푸르나는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하지만 작년 10월 첫 도전에서 안나푸르나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눈과 안개로 1m 앞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현상과 초속 35~40m의 강풍 때문에 정상이 눈앞인데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만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귀국한 그녀를 기다린 것은 앞서 그 해 5월 오 대장이 정말 칸첸중가 꼭대기를 밟았느냐는 논란이었다.

일부 국내 산악인들은 오 대장이 칸첸중가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정상임을 확인하기에 불충분하고 등정 소요시간도 너무 짧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오 대장은 함께 등정한 셰르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악천후로 시야가 매우 좋지 않았다.

함께 등정한 셰르파 3명이 정상이라고 말해 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안나푸르나에 오르면서 오 대장과 같은 13좌를 달성한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과 일부 외신은 작년 국내에서 문제가 됐던 칸첸중가 등정 논란을 다시 끄집어내며 흠집을 내려고 했다.

파사반에 쫓기는 상황이 된 오 대장은 지난 25일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전하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강한 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날씨 때문에 다시 물러나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렇지만 결국 27일 오후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면서 세계 여성 최초의 히말라야 완등자로 역사에 남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