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본부.10여년 전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의 관료들이 구제금융을 요청하러 방문했던 이 자리에서 23일(현지시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렸다. 글로벌 금융질서를 따라가기 급급했던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모임의 좌장을 맡아 글로벌 이슈를 주도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회의에 배석한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세 도입 6월에 재논의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된 G20 회의는 3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세션은 금융규제 개혁을 주제로 윤 장관이 직접 사회를 봤고 2세션과 3세션은 각각 에너지보조금 및 국제금융기구 개혁,세계경제 진단 및 거시정책 공조를 주제로 논의가 이뤄졌다.

이 가운데 윤 장관이 주재한 금융규제 개혁 논의가 이날 회의의 하이라이트였다. 핫 이슈로 부상한 은행세 도입 문제 등을 놓고 20개국에서 참석한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40여명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IMF는 회의 시작과 함께 미리 준비한 은행세 도입 관련 중간보고서(금융권 분담 방안 보고서)를 제출했다. 은행의 비(非)예금성 부채에 세금을 매기자는 금융안전분담금(FSC)과 과도한 이익 및 보너스에 과세하자는 금융활동세(FAT) 등 두 가지가 방안으로 제시됐다.

G20준비위 관계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도입을 적극 주장하는 반면 캐나다와 일부 신흥국은 금융 환경과 발전 속도가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도입을 반대해 회원국 간 치열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 결과는 한국 시간으로 24일 오전 발표된다. 정부 관계자는 "도입에 찬성한 국가들 간에도 과세 대상인 비예금성 부채 범위와 과세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이 존재해 이번 회의에서는 '은행세 도입을 위해 회원국이 노력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선언을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최종 협의 결과는 오는 6월 부산 재무장관 회의에서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 문제도 거론

이날 회의에서는 또 자본건전성 규제 강화 방안과 대형 금융사(SIFI)의 도덕적 해이 방지 방안 등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다만 두 가지 이슈에 대해선 IMF 산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10월 말까지 차질 없이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추진 상황을 점검하는 선에서 그쳤다.

2세션에서는 작년 9월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화석에너지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놓고 각국의 의견이 제시됐다. 감축 규모 등에 대해 선진국과 신흥 개도국 간 입장차가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IMF 지배구조 개혁과 관련, 선진국 지분 중 5%를 신흥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은 11월 서울 정상회의 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