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공천비리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지역구 의원에게 2억원을 건네려다 적발된 여당 소속 한 군수가 구속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의 공천 여부가 선거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 속에서 예비후보자들은 '공천 헌금'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중앙선관위는 각종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입후보자를 잇따라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공천과정에서 자기 사람 챙기기와 낙하산 낙점의 구태도 되풀이되고 있다. 공천개혁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공천비리의 악순환

공천헌금은 지역 토착비리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는 "일단 정당 공천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특별당비 명목으로 공천헌금을 하는 게 유리하며 당선만 되면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는 인식이 후보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털어놨다. 각종 지역개발 사업에서 특혜를 주고 돈을 받았다 적발된 사례들은 이런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 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되기만 하면 공천헌금의 몇 배를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악순환이 끊어지질 않는 것"이라며 "최근 공천헌금이 적발돼 줄줄이 구속됐는데 적발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지난 22일 지역 토착비리 감찰 결과 지방자치단체장 4명과 지방공기업 사장 1명 등 비리 혐의자 32명을 수뢰 ·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수사 참고자료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선거 먹이사슬이 '사천'(私薦) 낳는다

사천(私薦)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주민 여론보다는 다음 총선에 자기에게 유리한 후보를 낙점하는 구태도 되풀이된다. 경기도 고양 등 의원 몇 사람이 시장 한 명을 공천하는 지역치고 시끄럽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서울의 한 지역에선 특정인이 미는 사람에게 공천을 주기 위해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탈락시켰다. 자당에 유리한 지역이라고 연고가 없는 여성인사를 전략공천이라는 명목으로 투입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두 케이스 모두 "지역민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전문가들은 공천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간 얽히고 설킨 복잡한 먹이사슬 관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지방선거에는 현역의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서 그런 것이다. 시도당공천심사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만약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들이 합의를 보면 공심위는 합의를 대충 받아들이는 상황"이라고 꼬집은 뒤 "공천이 곧 당선인 한국정치 현실에서 공천을 받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고 싶은 유혹이 있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공천을 받았지만 선거에서 떨어진 한 후보자는 "당시 지역구 관리를 위해 고향에 내려갔더니 선거 참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공천부터 받고 지역구를 관리하라고 충고했다"며 "다음 선거에 나갈 때는 무조건 공천을 1순위에 놓고 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국회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구에 '자기 사람'을 심어 표밭 관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국회의원들은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들과 달리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지역민을 제대로 챙길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국회의원은 "지금(지방선거)은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의 힘이 세지만 총선이 다가오면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공천희망자와 국회의원의 갑을 관계가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방선거와 총선의 선거주기가 다르기 때문에 여야 할 것 없이 현역의원은 다음 선거를 위해 자기가 편한 사람을 기초단체장으로 심고 싶어 한다. 상호 의존적,밀착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학과 교수는 "서로 물고 물리는 순환구조이기 때문에 현역의원도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공천권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이 과정에서 지역 토착비리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6억~7억원으로 통하는 기초단체장 공천 뇌물액 규모가 '밑져야 본전'인 수준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문제다. 이번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한 한 사람은 "뇌물을 주고 공천이 안 되면 돌려받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 데다 못 돌려받는다고 해도 다음을 위한 '보험'이라고 생각한다"며 "기회비용이 크지 않은 셈"이라고 밝혔다.

◆현실 대안은

공천 비리가 판을 치지만 현실적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공천비리가 제도의 문제인지 운영의 문제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김성수 교수는 "굳이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김형준 교수는 "팔이 아프다고 해서 팔을 자르지 않고 아픈 곳을 고치듯이 정당정치를 활성화시키려면 정당공천제는 유지해야 한다"며 "한 번 비리가 적발되면 영구히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등 징계수위를 강화하거나 공천과정에서 지역의 독자적 운영권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등 운영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국회 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은 "작게 쪼개진 행정구역을 크게 바꾼다거나 서로 다른 선거주기를 통일시키는 것도 공천비리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책임정치 구현과 난립후보 방지 등 정당공천제의 장점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지방의원과 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공천이 필요악이라고 한다면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며 "정당정치와 지방자치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이대로 가다간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신영/민지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