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용평가사로부터 투자적격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부도율이 투기등급 기업보다 더 높은 '부도율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투자협회가 21일 발표한 '2009년 신용평가기관 평과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적격등급인 'BBB' 를 받은 기업들의 부도율은 7.4%로 집계됐다. 반면 투기등급에 속하는 'B'등급을 받은 기업의 부도율은 이보다 더 낮은 5.9%에 그쳤다. 역시 투기등급이지만 'B'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BB'급은 부도율이 19.4%에 달했다.

통상 높은 신용등급을 받은 기업은 등급이 낮은 기업보다 회사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양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B'등급 기업의 실제 부도율이 상위 등급보다 더 낮게 나온 것은 신평사들이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윤영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국내 신평사들은 경기 상황이 좋아지면 신용등급을 쉽게 올려주지만 경기가 나빠질 때는 등급을 제대로 못 내리는 경향이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일부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신용등급을 거의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도 "해외 신평사들은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그 회사가 인수 · 합병(M&A)에 대해 얼마나 공격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도 고려하지만 국내 신평사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M&A 후유증으로 작년 말 워크아웃을 신청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신용등급을 선제적으로 낮추지 못한 것은 이 같은 신용평가 방법의 한계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신평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신뢰도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평가 기간 중 진행한 설문에서 3개 신평사 중 한국기업평가와 한신정평가는 '신용등급평가의 독립성' 부문에서 '보통이하'(5점 만점에 3점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