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국토해양부에서 열린 '유럽 항공대란' 대책회의.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기업 대표들은 "당장 우회 항로를 마련하거나 안 되면 신항로라도 개척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유럽 현지 공장의 부품 재고가 조만간 바닥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유럽으로 향하는 하늘길이 막히면서 삼성전자는 16일부터 20일까지 모두 1048t의 반도체,휴대폰,LCD TV 등 주력 수출품을 창고에 쌓아놓고 있다. 무역협회는 국내 기업의 수출 손해 규모가 이날 현재 1억40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했다.

수출 기업들은 아시아나항공이 이날 밤 인천~빈 간 화물기 1편의 운항을 재개하는 등 유럽 항공길이 뚫릴 기미를 보이자 최악의 상황은 지나고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6일째 화물이 적체돼 있어 항공편을 통한 한~유럽 간 무역이 정상화되려면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주 고비 한계상황 곧 온다

이날 정부,전자업체,항공사 등은 유럽 항공 대란이 발생한 후 처음으로 대책 회의를 가졌다. 항공 수출 물량이 많은 삼성,LG전자 등은 "외교력을 발휘해 우회 항로를 마련해 달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우회 항공편 확보를 검토하는 한편 항공 운항 정상화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무 무역협회 하주사무국장은 "항로를 바꾸려면 영공을 통과하는 국가와 협상이 필요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OTRA가 유럽 진출 기업 3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반도체 수출 업체 A사는 "반도체 호황으로 공장을 풀가동하는 상황에서 항공대란이 발생해 하루하루 손실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이탈리아,스페인,북아프리카 등을 통한 내륙 운송 등의 차선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헝가리에서 휴대폰을 판매하는 B사는 "현지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노키아,지멘스 등 경쟁사들이 치고 들어오는 데다 공급 지연으로 시장 신뢰도마저 떨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삼성,LG전자의 경우 인기 휴대폰 모델의 재고를 이미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주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피해 상황을 점검한 결과 이번 주까지는 현지 재고로 충당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항공 대란이 다음주까지 지속되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KOTRA 설문 조사에서도 항공 물류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3~4일 내에 정상화되지 않으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갇혔던 CEO들 우회로 통해 '탈출'


닷새째 유럽행 비행기를 띄우지 못하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사들도 피해규모가 불어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날 유럽으로 가는 여객기 5편과 화물기 4편의 운항을 취소했다. 아시아나항공도 2편을 결항시켰다. 이에 따라 지난 15일부터 대한항공은 총 27편의 여객기와 화물기 25편의 운항을 하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여객기 11편,화물기 7편을 띄우지 못했다. 항공사들은 언제 운항을 재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 17일부터 항공화물에 대한 예약 접수를 하지 않고 있다. 화물기 한 대당 운임료가 평균 50만달러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합해 약 1600만달러의 매출 손실을 입은 셈이다.

전시회,수출 상담도 차질을 빚고 있다. 19일 개막한 하노버산업박람회의 한국관에 공동 전시부스를 마련하려던 국내 중소기업 38개사 가운데 20일 현재 34개사가 항공편 결항으로 현지에 가지 못했다.

유럽에 출장 간 기업인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유럽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17~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철강협회 이사회에 참석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두바이로 우회하는 항공편으로 이날 오후 귀국했다. 해외 투자 유치에 나섰다가 5일간 영국에 고립됐던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은 고속열차,헬기 등을 이용해 영국을 벗어났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