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각종 쌀 할인행사 등을 통해 최대한 방출하고 있는 물량이 월 510t(쌀을 찧은 정곡 기준) 정도입니다. 비수기인 여름철까지 이 정도를 판다고 해도 오는 9월 중순 햅쌀이 나올 때까지 860여t(1만1600여명의 연간 소비량에 해당)에 달하는 쌀이 재고로 남는 게 불가피합니다. "

20일 김포 양촌면 양곡리에 있는 신김포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이곳 저장창고에는 '톤백'(ton bag)이라고 불리는 대형 쌀 포대 6000여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박호연 신김포농협 RPC사업단장은 "작년과 재작년 2년 연속 풍년이 들면서 쌀 생산량은 크게 늘어난 반면 국내 쌀 소비는 계속 줄어들고 있어 물량 해소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그는 "작년에도 5억7000만원 적자를 냈는데 올해 사업계획은 이보다 더 나쁜 '10억원 적자'로 잡았다"며 "최근 쌀값 하락 속도가 빨라져 이 목표마저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실제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조사한 이달 초순 전국 산지의 쌀 평균가격(정곡 기준)은 20㎏당 3만4100원으로,작년 같은 시기에 비해 15% 이상 떨어졌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았던 2006년 5월(3만4300원)보다 더 내려간 수준이다.

적자폭을 줄이려는 전국 농협 및 민간 RPC의 출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호남 및 충청지역의 일부 제품은 20㎏ 포대당 2만8000원까지 급락,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3만원 선도 붕괴됐다.

◆미곡처리장,쌀 출하 전쟁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하루에 20㎏ 쌀을 1000포대 넘게 판매하는 쌀 도매상 효승유통의 박인상 이사는 "현재 쌀 출하시장은 전시(戰時)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국 RPC들이 보유물량을 먼저 해소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단장은 "농협,민간 할 것 없이 전국 모든 RPC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유통채널을 통해 물량을 처분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며 "신김포 RPC도 홈플러스 등의 할인행사에 참여해 판매량을 최대한 늘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RPC가 없는 포항의 한 농협 관계자는 "재고물량을 줄이기 위해 농협 전 직원을 동원해 대대적인 판촉에 들어갔다"며 "그러나 물량 해소가 쉽지 않아 올해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경북 의성군 농협 RPC 관계자도 "출하량을 늘리기 위해 이달부터 20㎏짜리 쌀 출하가격을 2000원 낮췄다"며 "그러나 쌀 유통업체 등으로 '저가 쌀' 물량이 흘러들어가면서 쌀 판매는 부진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쌀값이 떨어지고 매출도 함께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정철 농협중앙회 RPC지원과장은 "작년에도 162개 농협 RPC 가운데 112개가 적자를 냈는데 올해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 쌀값 마지노선 3만원 붕괴

전국 산지에서 쌀 출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최근 2년 연속 풍년이 들면서 심각한 공급초과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수확량이 전년보다 40만t 이상 많은 484만t에 달한 데 이어 작년에도 최근 5년 새 가장 많은 491만t이 수확됐다.

이에 반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09 양곡연도'(2008년 11월~2009년 10월)의 1인당 쌀 소비량은 한 해 전보다 1.8㎏(2.4%) 줄어든 74㎏에 그쳤다.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1984년(130.1㎏) 이후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어 2006년(78.8㎏)에는 쌀 한 가마니 이하 수준으로 떨어진 데 이어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양곡시장 안정을 위해 작년보다 20만t 이상 많은 71만t을 거둬들인 상태다. 그러나 시장에선 여전히 10만~20만t 이상 공급초과 상태라는 게 양곡업계의 설명이다. 쌀 출하경쟁으로 최근 20㎏짜리 쌀 최저가격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인식됐던 3만원 선 아래로 내려갔다. 윤춘식 동진RPC(전북 부안) 사장은 "쌀 소비가 줄어드는 올여름 이전에 최대한 물량을 줄이기 위해 작년 말 3만2000원(일반미 기준)에 팔던 20㎏ 쌀을 최근 2만8000원까지 내렸다"고 털어놨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정부에 23만t을 추가로 구입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정부의 별도 조치가 없는 한 쌀값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 현재 산지 농협 창고에 쌓여 있는 쌀은 모두 99만2000t으로 한 해 전에 비해 15%(13만2000t),2년 전과 비교하면 63%(38만5000t) 이상 많은 상태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