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에 사는 김모씨(56 · 여)의 하루는 새벽 5시 반에 시작된다. 밥을 짓고 식사한 뒤 도시락 2개를 싸들고 작전역으로 향한다. 인천지하철 동춘역에 내린 뒤 회사 버스를 타고 남동공단 내 공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8시 반.'윙'하는 기계소리가 들리지만 호텔처럼 청결한 중소업체에서 CNC장비로 금속을 가공하는 게 김씨의 업무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꺼내든다. 식당에서 동료들과 유쾌하게 얘기하며 사먹을 수도 있지만 도시락을 싸오는 것은 한 달에 10만원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돈이면 재수하는 외아들의 한 달 독서실비다. 혼자서 세 자녀를 키우다보니 학원에 보낼 형편이 못 된다. 그래도 독서실에서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는 아들이 대견하고 그 생각에 힘을 얻는다.

요즘 김씨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봄꽃 때문만이 아니다. 일감이 늘면서 잔업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근비를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퇴근 뒤 반찬거리를 장만해 집으로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간호대를 다니는 큰딸과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방송통신대를 다니는 둘째딸,공부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몸은 힘들어도 희망이 샘솟는다.

작년 초까지만해도 김씨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일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의 파고를 이 회사라고 피해갈 순 없었다. 불안이 엄습했다. '혹시 구조조정을 당하는 건 아닌가. ''그러면 네 식구의 생계는 어떻게 되는가. '

더구나 작년까진 가족 중 유일하게 자신만이 돈을 벌었다. 이런 마음을 읽어서인지 이 회사 유모 사장은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했다. 대신 신기술을 개발하며 호황에 대비토록 했다. 유 사장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온 터라 직원들의 불안감을 잘 알고 있었다. 호황 때 사람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아는 그였다. 낮에는 당시 동숭동 서울대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야간 상고를 나온 유 사장은 1984년 안양천변에서 2명을 데리고 창업해 이제는 연간 수백만달러의 정밀금속부품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비롯해 40여개국에 수출하는 중소기업을 일궈냈다.

봄이 되자 남동공단에 트럭이 부쩍 늘었다. 양극화로 고통받는 기업들도 많지만 전반적인 경기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다보니 유 사장은 요즘 인력난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오더가 밀려 적어도 10여명을 충원해야 하는데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 단순 생산직은 물론 기술직도 마찬가지다. 하루종일 전문대학을 쫓아다니고 구인광고를 내도 마찬가지다. 전자부품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공단 내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올 들어 외국인력 도입쿼터는 대폭 줄었고 불법체류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은 강화되고 있다. 그나마 큰 도움이 됐던 병역특례제마저 2012년에 없앤다는 우울한 소식뿐이다. 여전히 젊은이들은 중소기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제 정부는 현장 경기에 맞춰 인력정책을 다시 짜야 할 때가 왔다. 외국인 도입을 늘리고 병역특례제 폐지도 재고해야 한다. 그동안 어려움을 참고 이겨낸 유사장과 같은 중소기업인들에게 희망을 던져줄 수 있는 인력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남동공단에 비로소 봄다운 봄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