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치 깊숙한 '개입'..기준도 매번 달라
시민단체 "공정한 룰, 승복문화 정착시켜야"


6.2 지방선거에 출마할 각 당의 후보 공천 중간 결과가 드러나자 전국 곳곳에서 잡음과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의원들과 불화로 낙천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고 공천기준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재심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밀실ㆍ정실 공천'이라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거나 단식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해당 정당과 공천심사위측은 "공천자가 있으면 낙천자가 있기 마련"이라는 반응이나 시민단체들은 도덕성 기준이 오히려 후퇴했다며 '공정한 룰과 승복하는 문화'를 주문하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과 불화=낙천?
부산지역의 경우 이번 공천에서 탈락한 한나라당 최찬기 동래구청장과 이위준 연제구청장, 고봉복 금정구청장, 조정화 사하구청장은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난 18대 총선때 자신을 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행한 보복공천"이라며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경기 파주에서는 친박(박근혜)계인 한나라당 황진하 국회의원이 친이(이명박)계인 류화선 파주시장에게 지방선거에 불출마할 것을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황 의원은 지난달 13일 파주시청 부근 사무실에서 류 시장과 단둘이 지방선거에 얘기를 나누던 중 "여론이 좋지 않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이 된다 하더라도 다음 총선에 나오면 시민에게 누가 되는 것 아니냐"며 류 시장에게 공천신청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경북 문경.예천의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은 같은 당 소속인 신현국 문경시장을 해당 행위로 도당 윤리위에 제명을 신청했는데 신 시장은 "공천배제를 위한 제명신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앙당과 충돌..주류ㆍ비주류 대리전도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최근 전북도당 공천심사위원회가 마련한 기초단체장 경선방식을 전면 거부하자 강봉균 도당 위원장이 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하고 공심위원과 일부 예비후보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전주시장과 정읍시장 예비후보들이 잇따라 중앙당 방침을 비난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찮자 지역정가에서는 전북 기초단체장 공천이 도당과 중앙당 간 자존심 대결로 비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민주당 전주시장 경선을 놓고 정동영 국회의원이 지지하는 김희수 예비후보와 정세균 대표의 힘을 받는 송하진 전주시장 간 감정 대립도 만만치 않아 전주시장 경선 역시 '丁(정세균)-鄭(정동영) 간 대리전' 양상을 띨 것으로 보는 관측도 많다.

경남도지사 공천을 놓고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당 공심위가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결정 방침을 밝히자 강하게 반발해, 아예 선거운동을 접고 수차례 중앙당을 찾아 재심을 요구했다.

◇공천기준 '그때그때 달라요'
공천기준이 선거 때마다 다르고 공천권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자유선진당 충남 부여군수 후보로 거론됐던 윤경여(60)씨는 최근 "자유선진당은 군민을 섬기기보다 밀실야합을 통해 특정 정치인을 섬기는 인물을 공천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탈당과 민주당 입당을 선언했다.

충북 충주2선거구 도의원 공천을 노렸던 심흥섭 전 도의원 등 충주지역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 6명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됐으며 공정하고 중립을 지켜야 할 시당협위원장이 제 사람 심기와 특정학교 출신을 내세우는 일이 자행됐다"며 집단 탈당을 선언했다.

김충환 전 대구시의원은 한나라당 대구시당이 자신을 제외한 2명으로 공천 후보자를 압축하자 "공천 심사가 특정인을 위한 사천(私薦)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한 후보와 오차 범위 안에서 2위를 한 사람을 배제하고 3위 후보를 2배수에 포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건영(48) 한나라당 아산시장 예비후보는 최근 임좌순(61) 예비후보가 아산시장 후보로 내정되자 "도당이 시장후보를 전략공천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겼다"며 온양온천역 광장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성후보 할당제를 놓고도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충북 음성에서는 최임순 군의원이 한나라당 소속으로 재선을 노리다 낙천하자 "당이 여성 우선공천, 여성후보 번호 우선배정 등을 약속해 놓고도 공천에서 배제했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제주 양승문 시의원(한나라당)의 경우 여성후보 공천 할당제로 자신이 배제될 것을 우려해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낙천자들이 갖가지 이유를 대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공언하고 일부는 '무소속 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등 지방선거 때마다 같은 양상이 재연되고 있다.

경실련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후보자 도덕성 기준이 과거보다 후퇴했고 일부 국회의원은 공개적으로 기초단체장 후보자를 밝혀 공천심사 과정을 무력화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부산경실련 차진구 사무처장은 "정당공천은 당원과 유권자의 의견을 수렴해 상향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 사천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지방자치제를 시행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만큼 공천제도를 정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차 처장은 또 "각 당이 엄격한 공천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제대로 된 공천을 한다면 결과에 승복할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수많은 잡음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광호 전승현 김창선 박재천 이해용 김종량 이덕기 서진발 김지선 김영만 김도윤 이은파 민영규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b94051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