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와 과일 도매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10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라는 게 백화점과 할인점 구매담당자들의 분석이다. 일반식당에선 이미 풋고추 등 일부 채소류를 볼 수 없을 정도다. 3월 일조량이 역대 최저인데다 이상저온 현상이 지속돼 채소류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다음 주 초까지 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지역과 무 주산지인 제주도 등 대부분 지역이 흐리거나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다.

◆"채소 성장하지 못해"

9일 서울시 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청양고추 10㎏당 가격이 7만7860원으로 올라 지난해 3만7000원 선에 비해 107.0% 폭등했다. 무와 풋고추의 도매가격 역시 1만2188원(18㎏ 기준)과 7만4490원(10㎏ 기준)에 거래돼 전년 동기 대비 88.6%와 126.7%가 급등했다. 배추도 10㎏당 1만2238원으로 치솟아 작년의 9284원보다 31.8%나 올랐다. 양파와 애호박도 각각 87.8%, 67.1% 올랐다. 인창수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유통정보팀 과장은 "3~4월은 농작물 발육에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올 들어 이상기후가 계속되면서 배추가 10년 새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출하되는 제철 과일가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수박은 전년 동기 대비 43.6%나 비싸졌고 딸기(19.4%)와 참외(39.9%) 토마토(25.6%)도 크게 올랐다. 김해철 기상청 기후예측과 주무관은 "구름 낀 날씨가 많았던 3월의 일조시간은 평년의 61% 수준인 125.1시간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면서"이런 기후조건에선 식물이 성장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도 중국도 급등세

인도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발(發) 인플레이션 공포에 시달리는 가운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강희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등은 라면 조미료 등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다른 공산품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상이변이 농산물 가격변동성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1차산업(농업)의 비중이 낮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고 경고했다. 박용구 농촌경제연구소 연구원도 "농산물 가격은 소비자 물가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 급등은 다른 생필품 가격의 불안정성을 키운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락이 경제에 리스크로 작용하지 않도록 한국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특정 지역의 기온 강수량 강설량 일조량 등 날씨 요소를 종합적으로 분석,날씨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헤지하는 '날씨 파생상품'이 일반화돼 있다. 일본에선 일년 내내 안정적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발광다이오드(LED)로 태양광을 보충하는 유리 온실 형태의 '식물공장'이 보편화돼 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