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 퇴근 후 책을 둘러보러 나온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경제·경영분야 코너에서 멈춘다. 한 남성이 '화제의 도서'로 분류된 책 더미에서 집어든 것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내부사정을 비판적으로 파헤친 '도요타의 어둠'. 반면 도요타의 효율적인 생산방식과 '성공 신화'를 다룬 도서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대규모 리콜사태의 직격탄이 서점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난 2007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업체로 우뚝 올라서며 동종업계는 물론, 산업 전 분야를 '도요타 웨이(Toyota way)'로 이끌었던 도요타. 이 회사의 경영방식을 '본받자'고 주창했던 숱한 서적들이 서점의 재고창고에 쌓여가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말 촉발돼 전세계로 확산된 리콜사태의 영향으로 '도요타 성공 신화'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며 독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면받는 '도요타 웨이'

10일 국내 대형 인터넷서점 예스24(YES24)의 홈페이지 검색결과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도서 수는 총 186건에 달한다. 이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것은 '도요타 사태'에 맞춰 지난달 출간된 '도요타의 어둠 : 2조엔의 이익에 희생되는 사람들'이다. 진보성향의 일본 인터넷매체 마이뉴스재팬이 펴낸 이 책은 '도요타의 몰락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헤쳤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예스24가 최근 6개월간 판매실적 등을 토대로 산출한 '판매지수'는 2만3409로, 도요타 관련서적 판매량 2위인 '도요타 방식(2814)'과 10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도요타의 '성공 신화'를 다뤘던 책들은 점차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지난 2003년 출간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제프리 라이커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부 교수의 '도요타 방식(원제 The Toyota Way, 가산출판사·2004)'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 일부 대학 경영학과의 보충교재로도 활용될 만큼 인기를 누렸던 이 책은 지난 수개월 사이 판매량이 크게 줄며 판매 순위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도요타 방식'이란 필요한 물건을 제 때 적정 물량만 생산하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개념의 생산방식이다. 생산효율을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도요타가 주도한 이 방식은 1980년대 일본 제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기업이 커지고 생산량이 늘어나며 불량품 생산과 자동화 오류 등 점차 허점이 드러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교보문고 한 관계자는 "지난 2003년부터 도요타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며 각종 신조어로 치장한 관련 도서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며 "그러나 리콜사태 이후로는 더 이상 이런 책들이 나오지 않고, 대신 정반대의 내용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출판계도 '도요타 비판론' 대세

이 같은 추세는 일본 현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인터넷서점 아마존재팬의 '기업동향' 분야 판매순위를 보면 지난해까지 이 분야 10위권 안팎에 머물던 스테디셀러 '도요타 방식'은 23위까지 밀려났다.

반면 지난해 2월 출간된 '도요타 쇼크'는 17위를 기록, 2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이밖에 '도요타의 어둠(33위)'을 비롯, '당신이 모르는 도요타(171위)'와 일본의 가십성 주간잡지 '프라이데이'가 펴낸 '도요타의 정체(236위)' 시리즈 등 도요타의 경영방식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이 사이트 메인화면에 소개되는 등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편승해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계열 출판사 닛케이BP는 지난달 '도요타 리콜문제 취재반'을 동원해 '불편 연쇄-프리우스 리콜로부터의 경종'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도요타 방식'의 역자인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한·일 출판계의 이 같은 추세와 관련, "도요타의 몰락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세계 1위 업체가 시련을 겪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던 기업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이처럼 큰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일본에서 도요타를 비판하는 내용의 서적들이 연이어 출간되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지금까지 도요타는 비판과는 거리가 먼 '성역'과도 같았다"며 "그러나 실패를 교훈으로 삼으려는 독자들의 수요와, '도요타 쇼크'가 갖는 화제성을 활용하려는 출판시장의 수요가 맞물렸기 때문"으로 김 교수는 분석했다.

김 교수는 다만 "가이젠(개선·改善) 등 도요타 특유의 현장 생산방식의 강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며 "도요타는 이전부터 현장은 강하지만 본사가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최근 나온 관련서적들은 본사의 전략적 판단 실패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