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시위로 바람 잘 날 없는 태국에 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방콕에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근 한 달째 계속되면서 태국 정부는 7일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시위대는 9일 대규모 시위를 다시 열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4월에 이어 1년 만에 탁신 지지파(UDD · 붉은 셔츠)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등 현 정권 지지파(PAD · 노란 셔츠)와의 갈등이 또다시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외교통상부는 8일 태국에 여행경보 1단계(유의)를 발령하고 여행객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삼성 LG 등 현지에 지사를 둔 국내 기업들은 자칫 유혈 시위로 번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5년째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이 갈등에는 도농 간 격차 및 빈부차로 인한 사회적 대립과 불만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軍에 질서회복권…5인 이상 집회 금지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시위 26일째인 7일 정규방송을 중단시키고 TV에 출연해 방콕과 주변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정부는 군에 질서 회복 권한을 주는 한편 시민의 자유권을 제한하고 5명 이상이 참여하는 공공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됐다. 당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시위대를 30시간까지 구금할 수 있다. 아피싯 총리는 "수도 방콕을 정상화하고 범죄와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대의 저항은 점차 격렬해지는 양상이다. 앞서 7일엔 수백여명이 군경 저지선을 뚫고 국회의사당으로 진입했다가 철수했다. 유혈 충돌은 없었으나 시위대는 보안 인력으로부터 최루탄과 소총을 뺏기도 했다. 정부가 시위대를 강력히 탄압하면 유혈사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고,이는 현 정부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탁신 지지파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요구하고 있다. 유권자의 다수인 저소득층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탁신은 집권 시절 무상의료 · 교육 정책과 개발 드라이브로 서민층 중심의 붉은 셔츠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반면 반탁신 세력인 도시 중산층과 엘리트 계층은 생각이 다르다고 BBC는 전했다.

◆증시 급락…관광업 피해 눈덩이

'미소'로 먹고사는 관광대국 태국은 한 달째 이어지는 시위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아피차드 상카아리 태국여행사협회(ATTA) 회장은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호텔 예약을 대거 취소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시위가 시작된 후 한 달여간 태국 관광객 숫자가 예년보다 10% 감소했으며 시내 호텔의 객실 예약률이 30%에 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콕의 쇼핑가는 시위대에 점령당하면서 하루 1500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태국 증시도 8일 3% 이상 하락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12일 이후 전날까지 11% 오르며 무풍지대에 놓였던 증시지만 정치 리스크가 경기 악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진 탓이다. 외국인들은 태국 증시에서 전날까지 31일 연속 순매수 행진을 벌이며 시위에 무감각한 모습을 보였지만 비상사태까지 선포될 만큼 상황이 나빠지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이날 발표된 태국의 3월 소비자신뢰지수도 69.8로 두 달 연속 하락하며 4개월 만의 최저치까지 밀리자 정치 불안으로 경기 회복이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분석했다. 태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 경기침체에서 탈출했지만 정권 불안으로 경기부양책이 흔들릴 경우 경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용디폴트스와프(CDS) 금리도 시위 발생 이후 0.06%포인트 올라 리스크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불똥은 우리 교민에게까지 튈 것으로 보인다. 태국 교민의 대다수가 가이드와 식당 등 관광 관련업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KOTRA 태국지사 관계자는 "태국에서 일반 산업과 관광업은 따로 움직이는 분위기라 현지 진출 한국 기업에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며 "시내 도로 점거로 교통 혼잡이 유발되고 있어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관우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