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키르기스스탄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사실상 정부가 전복됐다. 군경의 발포로 반정부 시위대 중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철권통치를 펼치던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은 긴급히 수도를 탈출했다. 사실상 정권을 장악한 야당은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8일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 도중 대통령 청사로 향하던 시위대와 군경이 충돌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가 내무부의 보안본부와 국영 방송국,검찰청사 등 주요 관공서를 장악한 뒤 대통령궁으로 향하자 정부군이 실탄을 발포하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야당 측은 7일 현재 최소 100여명이 숨졌다고 주장했으며 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상자 중 상당수가 머리에 총상을 입어 사망자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야당인 아크숨카르당 지도자 테미르 사리예프는 국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다니야르 우제노프 총리가 사임 성명서에 서명했으며 전 외무장관 로자 오툰바예바가 과도정부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오툰바예바는 "과도정부는 앞으로 6개월간 임무를 수행할 것이며 이 기간에 헌법을 제정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위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것은 2005년 '튤립 혁명'이라 불리는 무혈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바키예프 대통령이 정치 개혁에 실패한 데다 경제난이 겹치면서 민심이 이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991년 구소련 붕괴로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은 1인당 국민소득이 740달러에 불과한 중앙아시아 최빈국이다.

한편 키르기스스탄에 공군기지를 배치,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고 러시아 견제 효과를 보던 미국은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7일 "미국은 현 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오후 키르기스스탄 내 마나스 공군기지를 일시 폐쇄하는 등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