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카이스트 전산학동 1층의 소프트웨어공학 연구실.당시 만 27세로 전산학과 최초로 '20대 박사'가 된 배현섭 슈어소프트테크 대표(38 · 사진)는 연구실 선후배는 물론 가족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전산학과 학부를 포함해 10년 동안 연구실에서 씨름했던 우주선 등 첨단장비의 전자제어장치(ECU) 연구를 응용,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차리기로 한 것.2년 만에 과학고 졸업,학부와 석 · 박사과정까지 정해진 길만 걸어온 배 대표로서는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박사학위를 딴 연구실 선배 15명은 모두 대학교수가 됐다.

3개 대학의 교수직 제의와 '기술은 독보적이지만 돈은 안 된다'는 선후배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은 단순했다. 배 대표는 "실험실에서 머리 싸매고 연구한 과제도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그때는 그것이 강의를 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2년여 병역특례 전문연구원 생활을 끝낸 2002년 연구실 후배 2명과 함께 슈어소프트테크를 차렸다. 초기 자본금은 1억원.실험실 연구과제를 사업화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긴 한 선배가 쾌척한 종잣돈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현재 슈어소프트테크의 직원은 50명으로 불었고,지난해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슈어소프트테크의 비즈니스모델은 원자력발전소,고속철도,자동차,항공기,통신분야 등 소프트웨어 결함이나 원인 모를 버그 등을 잡아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소프트웨어의 오류를 미리 잡아내는 것은 인명 피해 가능성과 천문학적인 리콜비용을 사전에 차단해 주는 효과가 있다. 최근 도요타 리콜사태는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오작동으로 인한 기업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자동차 전자 원자력 금융 · 통신 등 30개 대기업에 소프트웨어 공급실적을 갖고 있는 슈어소프트테크는 최근 도요타 사태 후 경각심이 높아진 기업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배 대표는 "최고급 차량의 경우 전자제어장치 등 센서종류만 100가지에 달한다"며 "이렇게 소프트웨어가 복잡하게 차체에 장착될 경우 원인 모를 버그가 생길 가능성이 높고,이를 제거하는 게 기업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부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 '붐'도 슈어소프트테크에 예상치 못했던 사업기회를 안겨주고 있다. 개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앱스토어에 올린 소프트웨어가 결함이 있을 경우 자칫 통신기기 고장은 물론 통신망을 교란시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SK텔레콤 KT 등 통신사업자들이 향후 재앙수준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자사 부담으로 슈어소프트테크의 검사용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할 처지다. 현재 슈어소프트테크는 SK텔레콤에 소프트웨어 장비를 공급하고,애플리케이션 등록 건수에 따라 라이선스 수수료를 받는데 향후 이 부문 매출이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슈어소프트테크는 소프트웨어 설계에서 탑재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는 국제 표준(ISO/IEC61508)을 확립,일본 복합기제조업체인 리코를 비롯 스웨덴 인도 등의 LCD제조업체에도 수출했다. 이 회사가 신중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 벤처캐피털인 CSK벤처캐피털로부터 2년 전 주당 2만2000원씩(액면가 44배)에 300만달러를 투자받은 것도 해외 거래실적 때문이다. 배 대표는 "매출 100억원에 순이익 50억원을 낼 경우 일반 제조회사와 달리 소프트웨어개발회사의 기업가치는 1000억원으로 평가받는다"며 "2012년까지는 이 같은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손성태/사진=신경훈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