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씨(35)는 2001년부터 2년여 동안 동료 정모씨(38)와 함께 서울의 한 증권전문가 양성 사설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씨는 정씨가 "예비군 훈련에 갈 동안 대신 주식을 매매해 달라"며 알려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계정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따로 기록해뒀다. HTS는 주식 투자자가 증권사에 가지 않고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주식매매 주문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씨는 정씨가 나중에 증권회사 주식수익률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하는 탁월한 투자실적을 내자 정씨의 투자를 따라하기로 마음먹었다.

25일 경찰청 수사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센터장 배용주)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씨는 광주광역시의 A증권회사에서 투자상담사로 근무하던 2006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주식장이 열리는 날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씨의 HTS 계정에 몰래 접속해 투자종목,거래수량,손익여부,수익률 등을 확인해 '커닝투자'를 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 투자상담사인 송모씨(35)도 함께 끌어 들였다. HTS를 통한 주식거래는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주식거래내역 확인은 아이디와 비밀번호 입력만으로도 가능했다. 정씨가 HTS에 접속하고 있는 중에도 이씨와 송씨는 다른 컴퓨터에서 동시에 접속할 수 있었다.

이들은 종잣돈 5000만원으로 508회에 걸쳐 무려 25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고 팔아 총 1억5000만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그러나 정씨가 우연히 HTS 접속 기록을 살펴보다 자신의 계정에 지나치게 많은 로그인 기록이 남겨진 것을 보고 수상히 여겨 이들의 범행은 탄로났다.

경찰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송씨를 불구속입건했다. 또 양벌규정에 따라 이씨 등 소속 투자상담사의 관리 및 감독을 소홀히 한 A증권사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사용한 다른 개인용 혹은 법인용 HTS 계정이 8개나 있는 점으로 미뤄 부당이득을 더 취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의 HTS가 이중 로그인이 가능하고 공인인증서를 통하지 않고도 거래내역 조회를 할 수 있어 금융당국에 법적,제도적 보완책 마련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