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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은둔의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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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비영리재단 클레이수학연구소는 2000년 5월 '수학 난제(難題)' 7가지를 선정해 이를 푸는 사람에겐 문제당 100만달러씩 주겠다고 발표했다. 100여년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혀온 문제들이 쉽게 풀리리라 여긴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예상을 뒤엎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가 제시된 지 채 2년도 안돼 7개 난제중 가장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던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이다. 수학계는 깜짝 놀랐고 쟁쟁한 수학자 6명이 팀을 이뤄 2년여 동안 검증한 결과 그 증명은 '참'으로 인정됐다.

    푸앵카레의 추측은 프랑스 수학자 푸앵카레가 1904년 제시한,우주 형태에 대한 위상 기하학적 추론이다. '3차원에서 두 물체가 특정 성질을 공유하면 두 물체는 같은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문제를 푼 주인공은 그리고리 야코블레비치 페렐만(44)이라는 러시아 수학자였다. 16살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아 천재성을 보여준 페렐만은 한때 미국에 거주하며 연구원으로 일했으나 유명 대학 교수직 제의까지 뿌리치고 러시아로 돌아가 '은둔의 수학자'란 별명을 얻었다.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필즈 메달'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페렐만은 수상을 단칼에 거부하며 이렇게 일갈했다. "수학을 좋아서 연구했을 뿐 돈 버는 데 관심이 없다. 동물원 원숭이처럼 타인 앞에 전시되기를 원치 않는다. " 이번엔 페렐만이 클레이수학연구소가 약속했던 100만달러 역시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원하는 것을 이미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해서가 아니다. 영국의 한 기자가 수소문해서 찾아가 보니 그는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서민 주택에서 소액의 연금으로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웃들도 "집에 들어가보면 낡은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의자,옛 주인이 남겨둔 매트리스 밖에 없었다"고 했다니 이런 괴짜가 없다. 경우야 좀 다르지만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장 폴 사르트르도 "노벨상을 받으면 작가 생명이 끝나기 쉽다. 나는 노벨상을 거부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부와 명예를 멀리하고 연구에만 몰두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 대필에 연구비 횡령,가짜 학위까지 난무하는 요즘엔 더 그렇다. 페렐만 처럼 한눈팔지 않고 일에 푹 빠진 사람들에 의해 진보는 이뤄진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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