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환율을 두고 이래라저래라(finger-pointing) 하지 마라." 전인대를 마친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14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작심하고 던진 말이다. "중 · 미관계 악화 책임은 미국에 있다. " 대놓고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온화한 화법을 주로 쓰는 원 총리가 이처럼 강성발언을 터뜨린 배경은 한 달 뒤 G2(주요 2개국 · 중국과 미국) 체제의 운명을 결정할 대형 행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15일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에 앞서 4월12일부터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핵 정상회담이 처음으로 열린다. 환율조작국으로 중국이 지정되거나,핵 정상회담에 중국이 불참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거부할 경우 G2 관계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4월셋째주 대회전

다음 달 12일부터 열리는 핵 정상회담의 총연출자는 오바마 대통령이다. 핵 정상회담을 통해 이란과 북한 등 핵 개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입장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핵개발 규제를 강화,금융위기로 손상된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중국이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는 것.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이달 초 중국을 방문,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을 요청했지만 확답을 못 받고 돌아갔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공고화되는 게 마뜩지 않다. 양국은 이란 핵 개발에 대한 제재를 둘러싸고 맞서 있기도 하다. 만일 후 주석이 불참해 이 회담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미국의 의도와 반대로 중국의 위상만 높여주는 꼴이 된다.

곧바로 결정되는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는 메가톤급 이벤트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이론상 모든 중국산 수입상품에 미국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양측의 전면전 돌입은 뻔한 일이다. 환율 경제문제가 국제핵 문제와 얽힌 형국이다.

◆팽팽해진 중 · 미관계

원 총리는 이날 미국과 서방에 구체적인 예를 들며 공세를 강화했다. 지난해 코펜하겐 기후회담에서 중국이 비협조적이었다는 비난에 대해선 "만찬회의 개최를 정식으로 통보조차 안하는 무례를 주최측이 범했다"며 반박했다. 중 · 미관계의 악화책임은 달라이라마를 만나고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미국에 있지,중국 때문이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자기 나라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다른 나라의 환율을 절상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나라는 이해할 수 없다"며 미국을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원 총리는 달러의 불안정은 올해에도 많은 우려를 갖게 한다며 미국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 국가신용을 담보로 한 국채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구글 사태에 대해선 "중국 법을 지켜야 한다"며 구글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입장이 바로 달라질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하면 세계 경제 성장률은 1.5%포인트 높아진다"고 주장하며 "중국이 미국 국채를 판다 해도 세계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조,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국이 표면적으로는 강성기조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로가 완전히 등을 돌리기엔 모두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중국이 필요하고,중국은 안정적인 성장을 하는 데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상호간에 국내용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홍콩 현대중국연구소 리창밍 소장은 "4월 대회전의 결과에 따라 미국과 중국 간에 신냉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며 "그러나 양측의 부담도 큰 만큼 앞으로 한 달간 뭔가 접점을 찾아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구전략 연계시각도

미국의 압력보다는 인플레 억제와 출구전략 수단으로 위안화 절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 총리는 "국내외의 경제 상황 및 추세를 면밀히 분석해 나아갈 때 나아가고, 후퇴(출구전략 사용)할 때 후퇴할 것"이라며 "결코 실기하지는 않겠지만 (출구전략 도입시기를) 신중하고 유연하게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올 들어 두 차례 은행 지급준비율을 올린 중국이 금리 인상과 위안화 절상 등의 카드 사용에는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