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리스의 심각한 재정위기가 유럽연합(EU)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지출은 언제나 세수를 초과했으며,투자자들에게 자국의 국채를 더 사달라며 손을 벌려 왔다. 그리스 정부의 이런 행태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수년째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는 미국 주정부들과 매우 닮았다는 점에서 미 연방정부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리스와 미 주정부의 막대한 재정낭비 및 높은 단기차입 의존도는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고용 · 주택시장의 혼란을 낳았다. 과감한 재정정책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들 정부의 재정난은 향후 달러 및 유로화 환율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로존 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의 통화정책 전반을 관리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재정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유로화와 달러를 시장에서 요구하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이 찍어내 통화가치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가 재정난에 못 이겨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는 일각의 전망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의 탈퇴는 곧 유로존 내 약소국의 이탈을 가속화해 유로존의 세력을 약화시킬 위험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ECB로선 유로존 결속 강화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에 대한 자금투입이 실제 재정개혁과 고용시장 개선에 도움을 줄 본질적인 수단이 아니란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말이다.

미 FRB가 처한 상황도 ECB와 별로 다르지 않다. FRB가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 기조를 이어가면서 미 주정부들은 부채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시중의 달러를 마구 빨아들였다. 이는 결국 실물경제 부문에 투입될 유동성을 감소시켜 미 경기회복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ECB가 그리스를 비롯한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유럽 국가들의 강도 높은 재정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유로화 가치안정이란 목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아울러 미 연방정부가 현재 각 주정부들이 처한 재정난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그리스발 재정위기와 환율 불안이 미국에서도 재연될 우려가 높아질 것이다.

통화가치의 안정은 유동성 흐름 및 고용시장 개선에 있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와 유로존 국가들의 대책 모색 과정은 각국 정부로 하여금 건전한 재정관리가 환율 정책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일회성의 구제금융 지원은 단기적인 사태 진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인 경제성장과 환율 안정엔 장애물로 남게 될 것이다. 외부 지원이 아닌 그리스와 미 주정부의 자체적인 재정정책 개혁이야말로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한 최우선 과제다.

정리=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이 글은 미국 시장분석기업 엔시마글로벌의 데이비드 멀패스 대표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유로화의 그리스 비극이 미국에게 주는 교훈(The Euro's Greek Tragedy,and Its Lessons for America)'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