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관전에서 적극적 분석으로
전문적 지식으로 TV해설자 못지않은 관전평


"프로토콜(채점표)을 보니 5번 심판은 김연아에게는 플립에서 가산점을 주지 않았는데 아사다 마오에게는 1점을 줬다. 이해할 수 없다. 아사다에게 김연아보다 높은 예술점수(PCS)를 준 심판도 두 명이나 된다"

피겨스케이팅 해설자의 말이 아니다.

24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에 채점표와 함께 올려진 한 네티즌의 글이다.

디씨인사이드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는 경기 직후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한 네티즌들의 관전평이 쏟아졌다.

피겨스케이팅뿐만이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스벤 크라머(네덜란드)의 실격 이유를 놓고 경기 직후 세계 유수의 언론들까지 혼란스러워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경기를 지켜봤다면 요즘에는 복잡한 경기 규정을 미리 파악하고 경기 내용을 전문가 못지 않게 분석하는 적극적인 응원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 예습은 기본..복습도 철저

이런 현상은 김연아가 세계 정상급 피겨스케이터로 두드러진 이후부터 시작됐다.

넘어지면 감점을 받는다는 정도가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지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던 일반인들이 김연아의 연기를 보다 정확하고 재미있게 즐기려고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각종 포털에서는 피겨 채점 방법과 채점표 읽는 법, 각종 기술의 난이도와 감점요인 등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올림픽이 김연아와 아사다의 대결구도로 좁혀지자, 두 선수의 대표적 기술인 트리플 러츠-트리프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김연아)와 트리플 악셀-더블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아사다)를 비교하는 영상과 글도 예습용 자료로 많이 올라왔다.

회사원 김명진(29) 씨는 "피겨스케이팅의 문외한이었지만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와 아사다의 대표 점프라도 알아놓자는 생각에 인터넷을 통해 예습을 했다"면서 "알고 즐기니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반응도 단순히 축하한다는 차원을 넘어 경기 내용을 세밀히 분석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극 초반에 몸을 회전시키는 동작이 조금 짧은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 긴장 하나 했지만 깔끔하게 트리플 러츠-트리프 토룹 콤비네이션을 마무리할 때 바로 1위를 확신했다"(디씨인사이드 아이디 `C*')거나 "스텝이 마지막에 약간 삐끗해 가산점이 다소 낮게 나왔다"(네이버 블로거 `L******')는 등 경기를 알고 즐기는 네티즌 관중들이 늘어나고 있다.


◇네티즌 수사대..스포츠에서도 실력 발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이슈 메이커의 사생활까지 낱낱이 파헤쳐 `수사대'로도 불리는 우리 네티즌들의 실력은 스포츠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24일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경기가 대표적이다.

경기 직후 크라머의 실격 배경을 TV 해설자가 잘못 설명하고, 외신들도 "코스에 아예 잘못 접어들었다", "코스에는 맞게 들어갔지만 들어가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등 혼선을 빚은 가운데서도 네티즌들은 간단 명료하게 진실을 밝혀냈다.

1만m는 400m 트랙을 인.아웃 코스를 바꿔가며 25바퀴를 돌아야 하기 때문에 인코스에서 출발하면 아웃코스로 도착해야 하는데, 인코스로 출발한 크라머가 인코스로 도착하는 장면을 캡처한 사진 한 장으로 실격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 것.

이 캡처 사진은 TV해설자나 언론들이 구체적인 실격 이유를 거론하기 이전인 이날 오전 7시49분에 올려졌다.

네티즌들은 또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어가며 크라머가 인코스를 두 번 타지 않고 정상적으로 경기했더라도 이승훈에게 금메달이 돌아갔을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아이디 `oldd****'은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인코스 반지름 26m, 아웃코스 반지름 30m의 반원형인데 인코스를 한 번 더 도는 선수는 30m 이상을 득을 본다"고 해박한 지식을 과시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네티즌의 실력은 최근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가 삭제돼 논란이 일었던 김연아 동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연아가 완벽한 점프 기술을 구사했지만, 감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이 동영상은 기술에 대한 설명을 캡션으로 곁들여 김연아 점프의 엣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번 피겨스케이팅 쇼트프로그램의 채점 결과를 두고도 분석이 이어졌다.

아사다의 연기를 두고 "트리플 악셀을 성공했다고 예술점수까지 김연아와 버금갈 정도로 받아 과거 50점대 후반이었던 점수가 73점까지 올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등의 댓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