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천동 신촌교회 오창학 원로목사(71)는 새해 들어 영락교회에서 부인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난해 말 22년 동안 맡았던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한 이후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이 자주 드나들 경우 교인들이 새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뭉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지난 9일 인터뷰를 위해 신촌교회에 모처럼 나왔을 때에도 오 목사는 교회에는 일절 알리지 않고 사무실 대신 어린이예배실에서 만났을 정도였다.

"전후임자 간의 갈등이요? 내가 마음을 비우면 그런 거 없어요. 원로목사도 사람이니까 '(교회를 위해) 내가 이만큼 했는데 몰라주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버려야 후임자가 잘 할 수 있어요. "

오 목사는 또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도 모두 교회에 내놓았다. 은퇴 후 살도록 교회에서 사 준 아파트도 소유권을 교회로 넘겼다. 대신 살아 있는 동안만 그 아파트에 살기로 했다. 부인 유순화 권사(67)와 미혼인 두 아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처음엔 "원로목사 사택 제공은 당회의 결정"이라며 번복할 수 없다고 버티던 교회 측도 오 목사의 순수한 뜻을 받아들였다.

"성경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저의 일이 이렇게 알려지니 쑥스럽고 걱정이에요. 요새 교회가 너무 세속화되고 세상에 물들어서 그렇지 원래는 전혀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 일인데 말입니다. "

오 목사의 퇴직금 반납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평북 강계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월남한 그는 공병장교로 강원도 원통에서 근무할 때 출석했던 초가집 교회를 시멘트 · 슬레이트교회로 바꿔줬고,신학대 등록금으로 쓰려던 장교 퇴직금을 그 교회에 바쳤다. 또 강원도 황지교회에서 6년간 일하고 떠날 때에도 퇴직금을 건축헌금으로 내놓았고,서울 영락교회에서 10년간 부목사로 일한 뒤 신촌교회로 오기 직전 받은 퇴직금도 모두 고아원 ·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 기부했다.

오 목사는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돈 버는 길로 가야지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퇴직금과 아파트값 등 10억원 정도로 지금 같은 편안함을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42년간의 목회를 마치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먹여주시고 들의 백합화를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주시는데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예수님께서도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은퇴 후에도 살 집이 있고,생활비도 교회에서 나오지 더 욕심 부릴 게 없지요. 저에겐 아파트보다 더 좋은 천당(天堂 · 하늘의 집)이 예비돼 있잖아요?"

'오직 예수'를 교회의 표어로 삼고 신자들을 이끌어온 그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말하고,행동했을까"라고 늘 고민한다. 중학교 3학년이던 열여섯 살부터 지금까지 5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먼저 바뀌고 예수처럼 살아야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 목사는 "앞으로 농촌교회에 가서 설교도 하고 해외 선교도 도우면서 여생을 보낼 것"이라며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간다고 했으니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