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대주주 일가의 비협조로 중단위기를 맞았던 금호 구조조정이 고비를 넘겼다. 채권단이 경영권 박탈 가능성을 언급한 지 하루 만인 8일 보유 주식의 담보제공과 의결권 위임을 거부해온 박찬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이 백기투항을 해온 것이다. 이로써 금호 계열사에 대한 3800억원 규모의 신규자금 지원이 이번 주 내로 이뤄지고 금호 계열사의 정상화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채권단 강공 하루 만에 굴복

채권단이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지난 7일까지 담보제공을 거부하던 박 전 회장이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은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이 금호 전체의 법정관리 가능성과 함께 대주주 경영권 박탈을 언급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박 전 회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채권단 협의회에 직접 출석,불과 1시간여 만에 담보제공 동의서를 작성했다. 채권단은 당초 자율협약형태로 경영권을 보장해주기로 했던 금호석유화학에 대해서도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절차를 통해 경영권을 박탈하겠다고 경고,박 전 회장의 항복을 이끌어 냈다.

◆계열사 경영권,형제들이 쪼개 가질 듯

채권단은 박삼구 그룹 명예회장과 박찬구 전 회장,박정구 고(故) 금호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그룹 경영전략본부 부장 등 대주주 일가의 책임이행 합의서가 접수됨에 따라 보유 계열사 지분을 담보로 이들 일가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채권단은 일단 워크아웃이 아닌 자율협약 형태로 구조조정을 진행키로 한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전 회장 측과 박철완 부장이 공동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금호그룹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고 있는 박삼구 명예회장 부자는 금호타이어의 성공적인 워크아웃을 전제로 향후 경영권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 등 나머지 계열사는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통해 지배권을 확보한 뒤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직접 관리하는 체제로 가게 된다.


산은 관계자는 "오너 일가들 간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대주주 책임이행 문제가 난항을 겪었던 만큼 이번에 이러한 갈등의 소지를 아예 없애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룹 경영부실의 책임이 적다고 판단된 박찬구 전 회장과 박철완 부장이 비교적 덩치가 큰 석유화학 부문의 경영권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 지분은 금호산업으로 원상복귀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은 내부협의를 거쳐 현재 1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이 아닌 금호산업 계열로 되돌려 놓을 계획이다.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주식대금은 채권단 지원을 통해 해결할 방침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애초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을 금호석유화학에 넘긴 것이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대한통운은 채권단 관리 아래 정상화가 추진된다. 아시아나항공은 대외신인도와 해외채권자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자율협약형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이들 회사를 정상화시킨 뒤 개별 또는 일괄매각해 채권을 회수한다는 방안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을 대주주에 보장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채권단과 체결한 경영목표 이행약정(MOU)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며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더라도 경영권을 지켜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밝혔다. 산은 측도 이번에 드러난 일부 대주주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감안할 때 자산 규모만 수조원에 달하는 회사를 경영할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앞으로 철저하게 경영을 감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심기/강동균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