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주변 식당가 "싸고 푸짐한 식당은 옛말"
'스펙쌓기용 사교육' 선택 아닌 필수


대학생들의 생활 물가가 최근 크게 오르며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학생들의 부담을 더욱 늘리고 있다.

고정수입이 없는 대학생에게 '싼 가격'은 먹고 마시고 입을 때에 중요한 소비기준이라서 대학가 주변의 음식점은 늘 싸고 푸짐했고 대학생은 어쩌다 돈이 생겨도 비싼 물건을 소비하는데 스스로 겸연쩍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다르다.

보다 다양한 소비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대학들의 고급화 전략과 맞물려 생활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사회에서도 대학생들을 더는 배려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점점 높아가는 대학가 물가와 대학생들에게도 불어오는 양극화 소비추세 속에서 캠퍼스 청춘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

◇ 학생식당 밥 한 끼도 '5천원'
대학생들의 지출액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학가 식비가 크게 오르고 있다.

싸고 푸짐한 한 끼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고급 식당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울대에는 카페 소반(비빔밥·국수), 더 키친(피자·스파게티) 등 10여 곳의 외부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서 있고, 이화여대에도 ECC(Ewha Campus Center)에는 닥터 로빈(저칼로리 식단 레스토랑), 고급 베이커리 등이 입주해 있다.

고려대의 중앙광장 지하는 훼미리마트, 로즈버디, 파파이스 등이 들어서 있어 코엑스에 빗대 '고엑스'라 불리고 있다.

학생식당과 매점의 가격도 외부 업체의 높은 가격에 따라 덩달아 오르고 있다.

연세대에는 푸드코트 형식의 학생식당인 부를샘'에 4천800원짜리 메뉴까지 등장했고 서강대는 편의점이 입점하며 10~15% 할인을 해주던 학생 매점 2곳이 사라졌다.

연대 총학생회 측은 "학생식당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해 학교 내에서 끼니를 해결하려해도 최소 3천원 이상"이라며 "학생들의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대학 내에는 여전히 2천~3천원 사이의 저렴한 학생식당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가의 전반적으로 높아진 먹거리 기준 자체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학생 대부분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에 재학 중인 고 모(23.여)씨는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무리지어 레스토랑에 가는데 나 혼자만 학생식당을 가겠다고 말하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에 변 모(24.여)씨는 "경제적으로 압박이 있는 지방 출신 친구들은 돈을 아끼려고 하숙집이나 자취방에 가서 점심을 혼자 해결하고 다시 수업을 듣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서영경 YMCA 신용사무국 팀장은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문화 속에서 대학생들에게 저렴한 소비만을 강요할 순 없다"며 "다만 보이기 위함이 아닌 건전한 소비가 대학가에 정착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스펙쌓기 비용 부담 가중 ..학원.어학연수는 필수
식비, 의류비 등이 대학생들의 고전적 지출이 늘어난 것이라면 팍팍한 취업난을 뚫기위한 사교육 비용은 '신설'된 부담이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최근 파인드잡과 함께 대학생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9%가 사교육비를 지출할 예정이며, 비용은 27만1천원으로 나타났다.

스펙(Specification: 이력서에 쓰는 자격요건) 쌓기를 위한 대학생들의 사교육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3학기를 맞는 대학생 임 모(22)씨의 경우 "한문학원, 컴퓨터활용능력 학원, 토익 학원, 회화 학원 등을 지난 1년 동안 골고루 다녔다"며 "20만~30만원 정도의 학원비는 부모님이 대주셨다"고 말했다.

어학연수도 빼놓을 수 없는 지출항목이다.

교육과학기술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시점인 2009년 4월1일 현재 전체 대학 재학생 가운데 해외연수중인 학생이 5%에 달했다.

대학생 20명 중 1명은 해외연수 중이라는 뜻이다.

6개월짜리 단기 연수 등이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적어도 대학생 5명중 1명은 졸업할 때까지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셈이다.

해외 어학연수가 1천만원이 넘는 고비용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의 필수코스가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 대학에 재학 중인 고은진(23.여)씨는 "방학이 끝나면 서로 '이번엔 (해외연수로) 어디 다녀왔니'가 인사다"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대학생들에 대한 사회의 배려도 예전같지 않다.

서울시에서는 2004년 대학생 교통 할인을 폐지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매일 버스로 등하교하는 전 모(24.여)씨는 "교통카드로 편도 2천200원(현금 2천500원)을 내며 신촌으로 등하교한다"면서 "교통비만 한달에 10만원이 넘게 든다"고 말했다.

서울시 의회 이수정 의원은 "대학생들의 교통비가 대부분 등하교에 사용되므로 교육비 차원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높은 대학물가는 대학생을 부모의 능력에만 의존하게 만들며 동시에 양극화를 체험하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재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은 처음으로 다양한 배경의 집단을 만나고 이해하는 공간"이라며 "대학마저 소비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공간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임수정 기자 transil@yna.co.krsj99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