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감속기 부품 생산업체 D사의 생산공장.6000㎡ 규모의 공장 곳곳에 배치된 대형 기계가 앞다퉈 부품을 쏟아내자 30여명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부품을 트럭에 실었다. 기계 소리가 멈췄던 작년 이맘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2008년 말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이 회사는 주문 물량이 급감,작년 설 무렵에 직원을 10명이나 내보냈다. 떨어지기만 하던 매출이 반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께.이때부터 상승세를 탄 매출은 이제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D사 장모 대표는 "지난해 설에는 '동생처럼 아끼던 직원들을 계속 끌고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보냈지만 올해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만큼 직원들에게 몇 십만원씩의 설 교통비 정도는 지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우울한 설'을 보냈던 중소기업이 올해는 '따뜻한 설'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들이 많이 입주한 전국 주요 공단의 가동률과 생산량,고용인원 등 모든 지표가 일제히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다.

김광일 산업단지공단 동향분석팀 대리는 "금융위기 한파가 한창이던 지난해 1월에 비해 같은 해 11월 전국 공단의 생산량은 평균 34% 늘었다"며 "각종 지표의 상승 추세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인 만큼 기업 종사자들도 지난해보다 다소 넉넉한 설 연휴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 상여금 139만원…5.9% 상승

지난해 11월 현재 전국 주요 공단에 입주한 기업 수는 3만8037개로 2008년 11월(3만4832개)에 비해 3000개 이상 늘었다. 생산(36조원)과 수출(148억달러) 역시 각각 15.2%와 14.1% 증가했다. 고용인원도 76만6000여명에서 80만명으로 늘었다. 멈춰섰던 공단이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시화공단에 있는 철강 임가공업체 백양씨엠피의 이정한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각종 프레임 주문량도 덩달아 확대되고 있다"며 "2월 초인데 이미 올 1년치 일감을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올 상반기 실적이 예상대로 나오면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해외여행을 보내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남동공단에서 무선통신기기를 제조하는 U사의 최희준 대리는 "지난해 초에는 매출이 40%나 떨어진 탓에 설 상여금은커녕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올해는 설 상여금이 지급될 예정인 만큼 조카들에게 줄 세뱃돈 걱정은 덜었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가 살아나면서 중소기업 직원들이 받게 될 '설 선물'도 지난해에 비해 한결 풍성할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종업원 100인 이상 기업 22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0년 설 연휴 및 상여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에 기업 종사자들은 1인당 평균 139만원의 상여금을 받을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5.9% 증가한 수치다. 대기업은 163만3000원에서 171만4000원으로,중소기업은 96만9000원에서 102만9000원으로 각각 지급액이 늘었다. 상여금 지급 업체 비율도 76.6%로,지난해(68.4%)보다 8.2%포인트 증가했다.


◆"작년보다 좋지만…" 업종별 체감경기 달라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호전됐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2008년 상반기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공단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어있는 공장'이 이를 대변해준다. 지난해 11월 현재 전국 공단에 입주한 3만8037개사 중 실제 공장을 가동하는 곳은 3만3515개사뿐이다. 4500여곳은 사실상 제조 및 영업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식 기업은행 반월중앙지점장은 "전기 전자 반도체업체의 투자는 늘었지만 나머지 업체들은 예년과 비슷하다"며 "업종에 따라 체감하는 경기 회복 정도가 전혀 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근 농협의 최동진 차장도 "설비투자보다는 운영자금으로 쓰기 위해 대출받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투자를 확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865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 자금 수요조사' 결과 46.6%가 "자금 사정이 여전히 곤란하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총 조사에서도 49.1%가 "올해 설 경기가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답했다. 지난해 설에 비해 경기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피부로 확연히 느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전기 전자 자동차 등 '잘나가는' 업종을 제외한 상당수 기업들은 금융위기 때 줄어든 매출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란 분위기는 공단 인근 식당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반월 · 시화공단 중심가의 한 음식점 주인은 "회식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금융위기가 끝났다지만 한번 닫힌 공단 근로자들의 지갑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안산 · 인천 · 서울=오상헌/임기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