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우피 골드버그)은 월가에서 인정받는 투자분석가. 임원 인사에서 당연히 제 몫인 줄 알았던 자리가 남자 후배에게 돌아가자 사표를 쓰고 투자자문사를 차리지만 여자란 이유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로렐은 결국 가상의 남자 동업자 로버트 커티를 만들어 승승장구한다.

여자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1998년에 나온 영화 '미스터 커티'다. 2000년대 들어 세상은 달라졌지만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한 모양이다. 경제전문지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은 15.2%에 불과하고 그나마 61곳엔 단 한 명도 없다.

유럽은 더하다. 프랑스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은 8%,독일은 7.8% 수준이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었을까. 프랑스 집권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여성 임원 할당제'를 만들어 하원에서 통과시켰다는 소식이다. 상원 표결을 거쳐 발효되면 프랑스 대기업들은 3년 안에 여성 임원을 20%,6년 안에 40%까지 늘려야 한다.

여성임원 할당제를 처음 도입한 것은 노르웨이.노르웨이는 2003년 기업 내 양성평등법을 통해 공기업과 상장기업의 경우 여성 중역 비율을 최소 40%로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 부과는 물론 상장 폐지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그 결과 5년의 유예기간이 끝난 2008년 여성임원은 법 시행 전 6%대에서 40.2%로 증가했다.

주주의 임원 임명권을 침해한다거나 함량 미달 여성이 선임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여성 임원이 증가하면서 '남성노인 클럽'같던 이사회가 젊어지고 시장의 흐름을 빨리 읽게 된 건 물론 남성들의 업무태도도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비슷한 법률을 통과시켰고,벨기에 영국 독일 스웨덴도 비슷한 법안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의 여성 임원 비율은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4대 그룹 중 여성 비율이 가장 높다는 LG와 여성친화적 기업이라는 CJ그룹이 각 2%,삼성과 SK는 각 1%,현대 · 기아차그룹은 0.2%다. 그나마 내부 승진은 극히 적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힘든 일을 시키기 어렵다,직업의식이 희박하다 등.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힘든 구조와 편견인 것처럼 보인다. 기존 관념을 바꾸지 않는 한 변화는 어렵다. '기업에도 전기충격 같은 요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장 프랑수아 코페 UMP 원내대표의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