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갈등을 다루는 정부의 업무 처리 방식이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예방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미 발생한 사회갈등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문제를 풀어 가는 전문적인 갈등 해결 시스템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보면 대부분 불가피하지 않았던,즉 예방할 수 있었던 것들"이라며 "일어나지 않아도 될 문제들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예방할 수 있었던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DAD 방식의 전통적인 행정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DAD는 'Decide-Announce-Defend'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정부가 정책을 이미 결정(decide)한 상태에서 국민에게 발표(announce)하고 이에 대해 반대 여론이 생기면 방어(defend)를 하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는 "DAD 방식은 정책 결정 과정에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사회적 갈등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미국의 일부 정부 부처가 채택하고 있는 '협상을 통한 규칙 제정(negotiated rulemaking)'을 제시했다. 이는 각종 법규를 만들 때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들의 대표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미국에서 '협상을 통한 규칙 제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환경청과 교통부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각종 규제를 둘러싼 소송 건수가 63% 감소하고 갈등의 규모도 67%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정부 때 국무총리실에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 몇몇 사안에 대해 시범적으로 활용해 본 일도 있다"고 소개했다.

강 교수는 사회갈등 해결을 위한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조정이나 중재가 아닌 '중조(mediation · 仲調)'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조정이나 중재가 권위 있는 기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중조는 전문가의 주선으로 당사자들 간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존의 갈등 처리 시스템은 문제의 완전한 해결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억제하고 관리하는 데 그쳤지만 중조는 갈등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미국에는 '전문 중조인' 제도가 있다"며 "전문 중조인이 다룬 문제 중 80%가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중조는 지역 단위의 정책은 물론 국가 간 영토분쟁 같은 국제관계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갈등 해소 기법"이라고 덧붙였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