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SAT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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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모범생이라도 학창시절 '커닝의 추억'을 갖고 있을 게다. 책상 위에 공식을 적어놓거나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답안지 일부를 슬쩍 베껴쓰곤 했다. 진학을 하거나 장학금을 타는 등의 '불순한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과락,또는 학사경고나 피해보려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다 보니 커닝에도 도(道)가 있다는 우스개까지 나돌았다. 답을 보여준 사람보다 점수가 낮아야 한다는 예(禮),누가 보여줬는지 비밀을 지키는 의(義), 들키지 않는 자리와 감독관의 습성을 파악하는 지(智),답이 이상해도 의심없이 받아 쓰는 신(信) 등 '4가지 도'를 벗어나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커닝 무용담'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던 시절 이야기다.
부정행위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있었다. 가장 흔했던 유형은 다른 사람의 답을 훔쳐보는 고반(顧盼),작은 책이나 종이를 붓대속에 숨겼다가 꺼내 보는 협서(挾書)다. 때론 답안지를 일부러 떨어뜨려 보여주는 낙지(落紙),시험지를 바꿔 내는 환권(換券)처럼 응시자들끼리 공모하기도 했다. 책이나 문서를 갖고 들어가면 3~6년 응시 기회를 박탈했고,다른 사람 답안지를 보다 걸리면 장 100대와 징역 3년에 처하는 등 가혹한 처벌을 했으나 부정행위는 근절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리 시험장과 연결되는 대나무 통을 길게 매설하고 통 속에 시험문제가 적힌 종이를 매단 끈을 넣은 후 밖에서 답안지를 작성해 들여보내려다 적발됐다는 기록도 실록에 전한다.
미국수학능력시험(SAT) 문제 유출 사건이 잇따라 불거져 파문이 일고 있다. 국내 어학원 강사가 태국까지 가서 빼돌린 문제를 미국 내 한국 유학생들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이번엔 국내에서 시험지를 오리거나 계산기에 문제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유출했다가 적발됐다. SAT 시행사인 미국 교육평가원(ETS)이 한국에서 진상조사를 벌인다고 하니 국제 망신이 따로 없다.
이는 내 자식의 점수만 높일 수 있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열과 돈에 눈이 먼 몇몇 학원의 행태가 빚은 합작품이다. 아마 커닝을 추억으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도 충격일 게다. 의도야 어떻든 커닝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용의자는 "파다하게 퍼져 있는 수법의 하나일 뿐"이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치밀하고 엄정한 대책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이렇다 보니 커닝에도 도(道)가 있다는 우스개까지 나돌았다. 답을 보여준 사람보다 점수가 낮아야 한다는 예(禮),누가 보여줬는지 비밀을 지키는 의(義), 들키지 않는 자리와 감독관의 습성을 파악하는 지(智),답이 이상해도 의심없이 받아 쓰는 신(信) 등 '4가지 도'를 벗어나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커닝 무용담'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던 시절 이야기다.
부정행위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있었다. 가장 흔했던 유형은 다른 사람의 답을 훔쳐보는 고반(顧盼),작은 책이나 종이를 붓대속에 숨겼다가 꺼내 보는 협서(挾書)다. 때론 답안지를 일부러 떨어뜨려 보여주는 낙지(落紙),시험지를 바꿔 내는 환권(換券)처럼 응시자들끼리 공모하기도 했다. 책이나 문서를 갖고 들어가면 3~6년 응시 기회를 박탈했고,다른 사람 답안지를 보다 걸리면 장 100대와 징역 3년에 처하는 등 가혹한 처벌을 했으나 부정행위는 근절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리 시험장과 연결되는 대나무 통을 길게 매설하고 통 속에 시험문제가 적힌 종이를 매단 끈을 넣은 후 밖에서 답안지를 작성해 들여보내려다 적발됐다는 기록도 실록에 전한다.
미국수학능력시험(SAT) 문제 유출 사건이 잇따라 불거져 파문이 일고 있다. 국내 어학원 강사가 태국까지 가서 빼돌린 문제를 미국 내 한국 유학생들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이번엔 국내에서 시험지를 오리거나 계산기에 문제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유출했다가 적발됐다. SAT 시행사인 미국 교육평가원(ETS)이 한국에서 진상조사를 벌인다고 하니 국제 망신이 따로 없다.
이는 내 자식의 점수만 높일 수 있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열과 돈에 눈이 먼 몇몇 학원의 행태가 빚은 합작품이다. 아마 커닝을 추억으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도 충격일 게다. 의도야 어떻든 커닝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용의자는 "파다하게 퍼져 있는 수법의 하나일 뿐"이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치밀하고 엄정한 대책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