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사이즈 미'에서 모건 스퍼록이란 괴짜 감독이 '햄버거만 먹고 살기'를 직접 체험하는 실험을 했다. 30일간 하루 세 끼를 햄버거로 때우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 상태를 기록하고, 의사 영양사 등의 의견을 물어 영상에 담았다. 실험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몸무게가 5㎏이나 늘고 무기력증과 우울증까지 느꼈다.

영화는 패스트푸드가 예상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실감나게 전하며 높은 관심을 끌었다. 그쯤 되면 반(反) 패스트푸드 분위기가 형성될 만도 했으나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새로 개발돼 나온 저열량 메뉴보다는 기존의 맛을 유지하며 크기를 키운 햄버거가 더 많이 팔려나갔다. 두툼한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끼는 특유의 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대부분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길들여진 음식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이어트는 성공확률이 5%도 안된다고 할 정도로 쉽지 않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속시원한 효과를 못보니까 최근엔 비만 유전자를 차단하는 방법까지 연구되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생명과학연구소의 앨런 샐틸 박사는 비만 유발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하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비만 관련 성인병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쥐 실험에서 밝혀졌다는 논문을 의학전문지 '셀'에 발표했다.

이번엔 유럽 일부 국가가 살찌는 음식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사용을 제한하는 이른바 '비만방지법' 제정에 나섰다. 이미 청량음료에 '소다세'를 물리고 있는 덴마크는 과세 범위를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고,루마니아는 패스트푸드에 1%의 세금 부과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스페인은 트랜스지방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황당 법률'만 생기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개입하다가는 법으로 규제하지 않을 분야가 어디 있겠느냐는 거다.

이렇게 극단적 처방이 나온 이유는 1980년대 이후 유럽 비만 인구가 최대 3배나 급증한데다 수그러질 기미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국민 건강을 지키기 어렵고 결국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역으로 살빼기 열풍이 지나쳐 건강을 해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는 '다이어트 제한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