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도시에서 범죄는 사라지고 총기는 박물관으로 보내진다. 대신 도시 곳곳에 온갖 감시장치가 설치돼 길 가다 혼자 욕만 해도 벌금고지서가 발부된다. 통제에 반발하는 집단이 생겨나자 지도자 콕토는 냉동감옥에 가뒀던 19세기 킬러 피닉스를 이용,이들을 없애려 한다.

파괴와 살상을 일삼는 아날로그 킬러에 치안당국은 속수무책이다. 결국 피닉스 체포 당시 인질을 죽게 만들어 냉동감옥에 수감됐던 경찰 스파르탄을 가석방한다. 스파르탄이 피닉스와 싸우는 동안 콕토의 비리가 알려지고 피닉스 또한 제거되면서 도시는 전체주의에서 벗어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의 이면을 다룬 영화 '데몰리션 맨'(1993)이다. 안전한 세상,범죄와 테러 없는 도시를 위한 장치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속박과 감시라는 역작용을 부른다. 위협이 줄어들지 않아서인가. 2002년 작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드러난 상황은 한층 심각하다.

2054년,워싱턴에선 범죄를 미리 예측하는 최첨단 치안시스템 '프리 크라임'이 작동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의 용의자를 잡아들이는 것이다. 아들을 잃은 뒤 다른 사람에겐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겠다며 용의자 체포에 앞장서던 주인공은 자신이 미래 범죄자로 지목된 뒤에야 무엇이 문제인지 밝히려 든다.

영화 속 내용은 갈수록 구체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처럼 그 자리에서 지적하진 않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CCTV는 온갖 곳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무심코 지나치고,효능만 보도돼서 그렇지 내 모든 움직임이 들키고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렵다.

지난 연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항공기 폭파 기도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알몸 투시기'로 불리는 전신 스캐너 도입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찬성하는 쪽에선 테러 방지를 위해선 도리가 없다지만 인권 침해와 혹시 모를 인체 부작용 우려 해소가 먼저라는 반대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몸 속은 보지 못하고 가루나 액체도 구분할 수 없으니 테러범은 걸러내지 못하면서 일반인만 불편하게 할 거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에선 이런 반대와 상관없이 '위시유'(WeCU,We See You)란 이름의 '마음을 읽는 스캐너'와 'FAST'라는 고성능 거짓말 탐지기 도입도 고려중이라고 한다. 이러다 마음 약한 사람은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섬뜩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