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장관 "한국도 에너지 절약해주고 돈 버는 기업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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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장관 신년 대담]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 대담=고광철 부국장
● 대담=고광철 부국장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지난 8일.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의 신년대담을 위해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우체국 본사) 21층에 있는 간이 집무실을 찾았다. 실내 공기가 쌀쌀했다. "집무실이 춥네요" 라고 기자가 묻자 최 장관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실내온도를 19도로 맞췄다"며 옷깃을 여몄다. 고광철 한국경제신문 부국장이 최 장관과 신년대담을 가졌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호화 청사' 문제로 화를 냈다. 에너지 낭비를 없앨 방법은.
"청와대 업무보고 때 '공공부문의 에너지 소비를 작년보다 3~4% 줄이겠다'고 하니까 대통령이 '그것 가지고 되겠나'라고 해서 10%로 늘려 잡았다. 신축 청사는 '에너지 효율 1등급'을 의무화하고 현재 공사 중인 청사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설계 변경을 유도하겠다. "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정부 규제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으론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에너지 절약도 비즈니스 관점에서 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어떤 대학병원의 연간 에너지 비용이 1000억원이라고 하자.10% 줄이면 100억원이다. 누군가 이 병원의 에너지 절감시설에 200억~300억원을 투자하면 2~3년 만에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 절약을 해주고 돈 버는 기업이 나와야 한다. 선진국에는 이런 기업이 많다. 올해 서울대 인천공항공사 등 32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 "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업에 벅찬 것 아닌가.
"그렇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어렵다. 대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에너지 효율을 꾸준히 높여왔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무조건 감축하라'고 할 게 아니라 기술개발 속도를 감안해야 한다. "
▼대통령이 '기업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재정 투입 덕에 우리 경제가 이만큼 버텼는데 이젠 재정 여력이 없다. 민간이 받쳐줘야 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봐도 신흥시장이 회복되는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는 생각같다. "
▼투자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중요한 게 부품소재 쪽이다. 완제품 조립라인은 몇 조원을 투자해도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 반면 부품소재는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보쉬(독일 자동차부품업체) 같은 기업을 봐라.부품 하나로 세계적 대기업이 됐다. 우리도 부품소재 쪽 대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형 생산구조가 되고 일자리도 많이 생긴다. "
▼부품소재 쪽 대기업을 육성하려면 뭘 해야하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관계가 중요하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갑을(甲乙) 관계'가 너무 심하다. 얼마 전 자동차 쪽 조사보고서를 보니 완성차업체의 수익률이 10%인데 부품업체는 3%다. 이래서는 부품업체들이 계속 연구하고 품질을 높이기 힘들다. 대기업이 '부품업체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
▼정부가 할 일은 없나.
"중소기업 기준을 정해놓고 이 기준을 넘으면 지원을 중단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식' 지원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R&D(연구 · 개발)와 세제 지원을 하면 세계적인 부품소재 회사로 커갈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 꽤 있다. "
▼대졸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데.
"지방공단 가보면 퀴퀴한 냄새가 나며 출퇴근하기 불편하고 문화시설이 없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꺼리는 측면이 있다. 지방공단 몇 곳을 대상으로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사업(공단구조 고도화)을 할 것이다. 대도시는 동대문패션 쪽을 유심히 보고 있다. 신발도 기능성 신발이면 충분히 돈이 되고,익산 보석단지 같은 곳도 괜찮다. 노동집약형 산업이 아니라 숙련집약형 산업으로 봐야 한다. "
▼중소기업을 외면하는 젊은층의 정신자세도 문제 아닌가.
"맞는 말이다. 대학 진학률이 85%면 경제가 10%,20% 성장해도 좋은 일자리 공급하기 힘들다. 외국에선 18살만 되면 죽이되든 밥이 되든 독립하는데 우리는 '대학 나온 놈이 중소기업 가냐'며 부모가 밥 먹여주고 용돈 준다. 이런게 바뀌어야 한다. "
▼중소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거기는 '레드오션'(누군가가 손실을 봐야 하는 경쟁시장)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되고 취업 안 된 사람들이 기술 없이 모두 뛰어든 거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고다. 경기가 아무리 좋아져도 장사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땜질식 지원보다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늘려야 해결되는 문제다. "
▼R&D 혁신 얘길 많이 한 것으로 안다.
"큰 방향은 칸막이를 없애는 거다. 기술이 점점 융합되고 대형화되는데 우리는 R&D가 전부 조각조각 쪼개져 돈만 들지 성과는 나오기 어렵다. 국가적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대형 과제를 정해 연구팀에 책임과 권한을 줘야 한다. "
▼작년엔 수출이 선방했는데 올해는.
"요즘 환율은 내리고(원화가치 상승) 유가는 오르고 있다. 우리 경제가 5% 성장하려면 수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여건이 불확실하다. 선진국보다 빨리 회복되고 있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 '품질 좋고 가격도 괜찮은' 미들(middle)형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의 성과를 이어가려면.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 우리가 대학 갈 때는 원자력공학과가 굉장히 인기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처져 있다. 터키 요르단 같은 중동국가뿐 아니라 미국도 한국 원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
▼10년 만에 정부에 '컴백'해보니 어떤가. (최 장관은 1999년 기획예산처 법무담당관에서 본지 편집부국장 겸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한나라당 정책통으로 활동하다 작년 9월 지경부 장관에 임명됐다).
"과거 개발연대 때는 공직자가 소신을 가지고 일했는데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져 아쉽다. 직업 공무원이 소신을 갖고 중심을 지켜야 나라도 중심을 잡는다. "
▼정책조정위원장일 때와 장관일 때 다른 점이 있다면.(최 장관은 입각 전 한나라당 수석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았다. )
"정책위 때는 '정부가 국민들이 원하는 걸 왜 빨리 못하나' 하는 아쉬움이 많았는데 정부에 와서 보니까 '국회가 빨리 해결해줬으면 좋겠는데 왜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SSM(기업형 슈퍼마켓) 문제가 대표적이다. 자영업자들은 '허가제로 하라'고 하는데 WTO(세계무역기구) 기준 때문에 안 된다. 그래서 WTO 기준 범위 내에서 속도조절할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내놨다. 그거라도 빨리 통과되는 게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데 안 되고 있다. "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