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모든 생명신호인 호흡 맥박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경제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4분기 -5.1%로 추락했던 성장률이 1분기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경기 회복 속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팀은 '선방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경제부처 수장을 맡고 있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고 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공기업 선진화,교육 선진화,노동시장 선진화 등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본지 고광철 부국장 겸 경제부장이 5일 아침 윤 장관을 만나 새해 경제 운용 방향과 포부를 들어봤다.


▼비상경제정부의 지난 1년을 평가한다면.

"경기 회복은 선방했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선 아쉬운 게 많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물론 공기업 선진화도 당초 예상만큼 진도가 썩 만족스럽지 않다. 교육도 미련이 많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자는 당초 목표에 진전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다고 답변하기 어렵다. 노사문제도 마찬가지다. "

▼우리 경제는 아직도 정부의 재정 지원이라는 링거를 차고 달리는 형국이다. 이걸 떼고 경제가 스스로 달리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고용 창출이 관건이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은 일자리 창출이다. 최대의 복지이기도 하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는데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공공 서비스 일자리는 임시방편일 뿐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결국 민간 투자를 활성화시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이 적절한 투자모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제조업은 인건비가 싼 중국 등과의 경쟁으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기가 쉽지 않다. 결론은 서비스산업밖에 없다. 고용유발계수만 보더라도 제조업은 10억원을 투자하면 11명의 일자리가 생기는 데 비해 서비스업은 두 배 정도인 18~20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서비스와 교육 같은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등 서비스 선진화는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려 공감대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이익집단 간의 조정을 이뤄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생보사 상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3년이 걸렸다. 무려 18년 동안 방치돼 있던 문제다. 투자개방형 영리법인도 여론 수렴 등의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진행하겠지만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된 만큼 진전을 이루도록 하겠다. 이미 제주도를 시범지역으로 정해 도입키로 했으며 단계적으로 전국 6곳의 경제자유구역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

▼올해 중 매듭지을 플랜은 갖고 있나.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문제뿐 아니라 각종 서비스 개혁은 일자리 창출이 궁극적인 목표인 만큼 대통령이 직접 챙길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주재의 국가고용전략회의를 만들어 매달 한 번씩 열기로 했다. 올해 중에는 매듭이 지어질 것이다. "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당초 정부안에서 상당부분 후퇴한 채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 범위 등을 놓고 힘겨루기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만족하진 못하지만 진전된 측면도 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경우 4월 중 출범할 공익위원회 역할이 중요하다. 여기서 타임오프 관련 범위를 어떻게 결론짓는지가 노사문제 해결의 1차 분수령이 될 것이다. 타임오프는 허용 범위와 한도를 상식의 바탕 위에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복수노조 도입 시 창구 단일화 문제도 노사 간 교섭 대상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실질적으로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

▼올해 성장률 5%는 유지되겠는가.

"정부가 제시한 5% 내외는 절대 무리한 숫자가 아니다. 보수적인 국제통화기금(IMF)도 4.5%로 제시했고 미국의 10대 투자은행(IB)들의 평균 한국 경제 성장률도 4.9%에 달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5%를 제시했지만 실제는 이보다 높게 보고 있다. "

▼경기회복세가 빨라질 경우 출구전략 논쟁이 본격화될 텐데.

"예상하고 있다. 특히 1분기 성장률이 기저효과로 높게 나올 텐데 이 때문에 출구전략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너무 빨라도 안 되고,너무 늦어도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 정부는 사전에 예고해서 시장참가자들이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는 조치들은 미리미리 취할 것이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반면에 시장 영향이 민감한 조치들은 소리소문 없이 취할 것이다. "

▼1분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금리는 출구전략의 결정판이다. 호주와 이스라엘이 먼저 금리를 인상했지만 아직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확장적 통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올해 5% 성장을 전망하지만 지난해 0.2%(전망)의 낮은 성장을 감안하면 성장이 본격화됐다고 보긴 이르다. 금리는 기본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가 현명하게 결정할 문제다. 다만 정부도 금리에 관한 한 입장은 가질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데 아직 금리를 조정할 움직임이 전혀 없다. "

▼한은법 개정을 포함해 금융감독 시스템 전반의 개편 문제는 올해 어떻게 할 계획인지.

"지금은 무엇보다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이 시급한 과제다. 한은법 개정 문제를 다시 추진한다면 혼선이 생길 우려가 있다. 정책 우선순위를 놓고 판단한다면 그렇게 급한 이슈가 아니다. "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선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한가.

"성숙된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법과 원칙이 실종돼 있다. 노조의 불법 파업도 자제돼야 한다. 국민도 자기 행동과 말에 책임지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시민의식으로 무장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모든 문제에 정치논리가 우선시되는 것도 문제다. 정치논리가 지배하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 효율을 중시하면서 이성적으로 냉철한 경제논리로 풀어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

정리=정종태/박신영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