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신종플루가 의료계의 경영과 고객만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선 동네 소아과 이비인후과 내과 등에는 평년보다 두 배 가까운 환자가 몰려 '가뭄 속의 단비'를 맞기도했다. 서울 방배동 GF소아과(원장 손용규)의 경우 지난해 9~10월부터 계절독감 또는 폐렴구균 백신을 맞으려는 소아 환자가 밀려든데다 신종플루가 한창 기세를 올리던 10월 하순과 11월 초에는 신종플루가 의심되는 환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소아과의 경우 한 환자당 진료수익은 3만~5만원 선(신속항원검사 1만8000~2만5000원 포함)이다. 한 소아과 의사가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최대 진료인원이 120~150명 수준이어서 올 9~11월 석 달 동안은 예상치 못한 대박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 석계동의 한 이비인후과는 아파트 단지 구석에 자리잡아 주민들에게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신종플루 유행을 계기로 단숨에 유명해졌고 돈도 꽤 벌었다.

다만 신종플루에 따른 호황 이면에는 내리막도 있었다. 손씻기,마스크 착용,예방접종,휴교 등의 조치가 내려지면서 본래 소아감기가 가장 많이 발병하는 12월의 환자 수가 예년보다 20~30% 감소한 것으로 동네의원들은 분석하고 있다.

안과 감염질환과 쓰쓰가무시병 같은 가을철 전염성질환도 위생상태가 개선되면서 예년보다 환자 수가 크게 감소했다.

대학병원들은 신종플루 유행 초기 '원내감염' 위험과 이로 인한 중증 환자의 내원 감소를 우려해 신종플루 환자를 기피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유행 절정기에 접어들자 적극적인 진료 자세로 전환했고 각 병원마다 최소 8억원 이상의 진료수익을 올렸다는 게 의료계의 추산이다.

경기도 고양의 관동대 명지병원은 초기대응을 잘해 경제적 수익은 물론 지역민의 신뢰라는'무형의 자산'도 얻었다. 이 병원은 지난해 10월16~31일 모두 1만339명,하루 평균 646명의 신종플루 환자를 진료했다.

이 기간 중 27일 하루에만 1111명의 환자를 진료,무려 1억5000만원이 넘는 진료수익을 올렸다. 진료시설로 천막이나 컨테이너를 활용한 여느 병원과 달리 지난해 9월 초부터 약 1억5000만원을 투입해 별도의 격리된 진료실과 입원실,진단검사장비 등을 갖추고 안전하고 쾌적한 시설에서 환자를 맞은 게 호평을 받았다.

병원 관계자는 "평년 연간 매출이 800억원이고 지난해 신종플루 관련 수익은 20억원가량"이라며 "특진비를 전혀 받지 않고,신속하게 검사결과를 통보해 전국 최고의 신종플루 대응병원이란 명성을 얻은 게 진료수익보다 더 컸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의 조은금강병원도 신속한 신종플루 대응으로 지난해 9월 이전 400~500명이던 내원환자가 10월 이후 배 가까이 늘어나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아산병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낮에 방문한 모든 환자에게 응급관리료를 1인당 3만원(환자부담금 1만5000원)씩 총2억4000만원을 청구해 빈축을 샀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12월 부당청구에 대해 환급해주라고 조치했다.

한의원들은 신종플루의 궁극적 해결책을 '면역력 증강'에서 찾는 분위기에 편승해 보약매출이 예년에 비해 20~60% 늘어나는 호황을 누렸다. 한의원들은 본래 여름 내 축난 기력을 보하려는 사람들로 가을 환절기(10월 중순께)부터 보약짓는 환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지만 지난해에는 9월로 앞당겼다.

전국에 46개 한의원을 갖고 있는 함소아한의원 네트워크는 지난해 9월 중 4833명의 소아환자가 보약을 지어 전년 동기(3049명)보다 58.5% 늘었다. 지난해 10월과 11월에도 예년보다 각각 20%,30%가량 보약 처방건수가 증가했다. 대신 피부과 성형외과는 환자가 줄어들었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피부과 원장은 "미용치료 분야는 원래 가을이 비수기에 속하지만 지난해에는 신종플루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꺼리면서 고객이 예년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줄었다"고 전했다.

대다수 중소병원들은 신종플루 항원검사비를 무조건 비급여로 청구한 후 향후에 확진되면 건강보험 급여혜택을 주는 등 자기편의적인 진료를 했다. 상당수 병의원은 '공포 마케팅'으로 적잖은 수익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신종플루가 일반 계절독감보다 약간 독한 독감인지 또는 통계적으로 치명성을 안고 있는 인플루엔자 전염병인지는 향후 1~2년 뒤에 나오겠지만 고열환자에 대한 항원검사 같은 불필요한 진료요소를 과감히 제거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