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은 저명한 와인 평론가인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이복형제가 아버지의 퀴즈로 승패를 가리는 이야기들을 만화 특유의 상상력으로 녹였다.

일본 고단샤(講談社)의 만화 잡지 '주간 모닝'이 2004년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엔 2005년 11월 출간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22권이 나왔다. 이 만화의 저자 아기 다다시는 스토리 작가 남매인 기바야시 유코(47),기바야시 신(43)의 공동 필명이다. 누나인 유코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남동생 신은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고단샤의 '주간소년매거진' 편집자를 거쳐 1997년 독립했다.

▶만화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유코)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만화가나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순정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집에서는 만화를 보여줄 상대가 남동생밖에 없었습니다. 20대 들어 만화 공모에 입상한 적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은 점점 그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 그 무렵입니다.

(신)저 역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출판사에 뛰어든 것도 만화 작가의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단샤는 일본에서 가장 큰 출판사로 문과 계열 학생들에게는 가장 가고픈 직장 중 하나입니다.

어려서부터 누나의 만화를 보고 토론하면서 만화가 단지 그림과 스토리텔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출도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구성을 바꾸면 만화 전체의 이미지가 확 달라지는 것을 보고 만화도 전문 프로듀서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소년탐정 김전일 등 미스터리 작가로 이름을 날리다가 갑자기 와인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와인은 완전히 취미였습니다. 돈을 못 벌어도 순수하게 와인을 전파하겠다는 의미로 시작한 거였는데 다행히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됐습니다. "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수많은 지식은 어떻게 습득했습니까.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에 따라 많게는 8명까지 스태프가 붙어 사전 취재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사람이 직접 취재하는 편입니다. 신의 물방울은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와인 값 때문이죠.한 달에 100만엔(약 1300만원) 이상을 쓰기도 합니다. 그밖에 정보를 얻기 위해 인간관계를 많이 맺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와인 세계의 사람들과 친숙해지는 데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습니다. 유한회사를 차려 거기서 나오는 월급을 받고 있는데,한 달에 얼마나 버는지는 기업비밀입니다(웃음).만화의 등장인물 중에는 실존 인물도 있습니다. 극중 이탈리아 와인 애호가로 나오는 '혼마 쵸스케'라는 인물은 도큐백화점의 와인숍 매니저로 실제로도 이탈리아 와인의 전문가입니다. 프랑스 와인에 집중하던 저희의 시각을 많이 넓혀줬습니다. "

▶취재를 위해 외국에도 자주 가십니까.

"만화에 가장 많이 다뤄지는 와인이 프랑스 와인이기 때문에 프랑스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자주 가는 편입니다. 소규모 독립 양조장에 시간 나는 대로 들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각광받는 남아메리카를 포함,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등 남반구 국가들에도 몇 번씩 가봤습니다. "

▶일본 출판시장 규모가 대단히 큰데 거기서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입니까.

"신의 물방울을 출판하는 고단샤의 경우 1년 매출이 1300억엔이 넘습니다. 그 중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넘습니다. 만화가 이처럼 비중이 커진 것은 일단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만큼 경쟁도 치열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작품이 재미가 없으면 한순간에 잊혀집니다. 반면 아무도 몰랐던 신인이 만화 공모에 당선돼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일도 많습니다. 작가들은 매일 링에 오르는 복싱선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

▶한국선 나이가 들면 만화를 안 보기 시작하지만 신의 물방울은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만화가들은 그를 통해 만화의 발전 가능성을 찾고 있습니다.

"성인들이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리려는 자세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를 그린다고 해서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리려는 마음을 잃으면 그건 이미 만화가 아니라고 봅니다. 저도 아이들이 읽지 못한 글을 쓰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소설로 출판하고 있습니다. "(동생 기바야시 신은 최근 한국에서도 출판된 증권 관련 장편소설 '비트 트레이더'를 썼다. )

▶일본 만화와 출판업계의 문제점은.

"가장 큰 문제점은 광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잡지를 만들 때 광고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호화로운 종이를 쓰고 컬러도 입히며 광고비를 높게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작비가 더 커지고,광고도 더 많이 끌어들여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광고 수입이 줄어 TV 신문 잡지 등 모든 매체마다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절대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되는 상황입니다. "

▶광고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현재 인터넷 광고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사용자가 급증한 데 따른 새로운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에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닙니다.

매체마다 그동안 축적된 재미를 창출하는 노하우가 있는 만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만화의 재미를 살려 기업의 광고효과를 높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신문사들의 수익모델도 인터넷의 등장으로 퇴조하고 있는 상황인데….

"현재 인터넷에 신문기사들이 많이 실리고 있는데,그게 신문사 경영 측면에서 얼마나 돈이 될지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기자들도 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특종이 책으로 출판돼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요즘엔 그런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문기자들과 인터뷰할 때 어떤 주제에 대해 '이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인터넷 검색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기자가 인터넷보다 정보를 늦게 아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정보화 사회가 돼 가고 있다는데 기자들이 정보를 발굴하는 노력은 점점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요즘 신문은 기사가 다 똑같습니다. 예전에는 신문을 3~4개 보는 게 의미가 있었지만 요즘은 하나만 봐도 충분합니다. "

▶한국에선 문화산업 발전 방향으로 '원소스 멀티유즈'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좋은 원작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등으로 활용해 수입을 창출하는 전략입니다. 일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만화원작을 드라마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라마 창작력을 꺾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만화가 전파매체를 타려고 할 때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의 규제입니다. 신의 물방울을 예로 들면 만화 안에 갖가지 고유 상표가 나옵니다.

게다가 술이 매회 끊임없이 나오게 됩니다. 일본에선 민영방송의 경우 상표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지만 공영방송인 NHK에선 불가능합니다. 한국도 이런 규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규제 문제뿐 아니라 스폰서 문제도 얽히게 됩니다. 전파매체는 광고수입 의존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세한 걸림돌을 넘어서야 비로소 '원소스 멀티유즈'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영상매체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잘만 활용한다면 만화 · 드라마 · 영화가 함께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겁니다. "

▶한국에도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화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한국 만화의 출판 규모는 일본보다 훨씬 작고 몇몇 작가를 빼면 충분한 수입을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 만화의 발전은 1970년대 이후부터였습니다. 당시 만화를 사랑하는 인재들이 경쟁적으로 좋은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작품이 만화계 발전의 원동력이었죠.처음 개척하는 사람들은 물론 힘들겠지만 서로 경쟁하며 만화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지금 한국은 영화계에 좋은 인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부러워하는 부분입니다. '올드보이'의 원작은 일본에서 일부 마니아층에서만 인정받는 작품이었지만,그런 작품이 한국에서 영화화되자 세계인의 인정을 받게 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

▶한국과 일본의 출판업계 전망은 어떻습니까.

"지금 출판업계가 이북(e-book)과 같은 전자매체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종이 편집이 급속도로 퇴화하지는 않을 겁니다. TV가 활성화됐는데도 라디오가 살아남았고,홈시어터가 집집마다 보급됐다고 해도 영화사업은 여전히 잘 되고 있습니다.

출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를 자신의 손으로 넘기는 감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많습니다. 모든 것이 효율화라는 명제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수묵화 같은 순수 예술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올여름에 이시카와 고에몬(일본의 홍길동 같은 의적 이야기)이라는 가부키 대본을 쓴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전통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입구를 낮추고 대중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

도쿄=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